연(緣)
아르마들을 관리하는 관리장으로 들어간 이안은 잠시 동안 아르마들을 내려다보았다.
바다의 권속들을 쓰다듬어보고, 그들과 ‘소통’을 하면서-
그녀는 아르마들의 상태만을 살다.
보통의 소통자들이 하는, 그런 평범한 일들을 하는 이안을 보며
시젠은 상단주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하다온의 이름을 아는 분과는 어떤 사이십니까?”
“이안 님을 아는 게 아니었나요?”
“시젠 아르켄- 당신은 시젠타님을 시해한 분이 아니십니까.”
“시젠타님을 시해한 건 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상단주.”
살기를 드러내며 시젠이 속삭였다.
“당신이 해야 할 건, 그게 아닐 텐데요. 이안 님을 최대한 보좌해야 할 일입니다.”
“하다온의 이름을 걸고 그건 반드시 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한 의문만큼은 해결해야겠습니다. 시젠 아르켄,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슨 질문이지, 그건?”
“당신 자신도 모르는군요. 당신은 시젠타님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된 소년입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이안의 서늘한 목소리에, 상단주와 시젠이 뒤를 돌아보았다.
“상단주. 건강한 아르마들을 잘 살펴주니 고맙군.
그런데- 시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이안이 서늘하게 말했다.
“말 그대롭니다. 시젠타님이 사라진 자리에서 발견된 소년
그게 바로 시젠 아르켄, 저 사람의 정체입니다.”
“시젠타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네, 그렇습니다. 인간의 왕이시여.”
“그게 대체...”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들으시지요.”
상단주는 이안에게 침실을 안내하며 그간의 일을 대략적으로 이야기했다.
항구도시 레이튼에서, 아르마 하나가 폭주했다.
소통자와 그 계약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현장을 벗어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피로 범벅이 된 상단이 발견된 건—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그 소식을 들은 시젠타는 레이튼으로 향했다.
소통자 없이 아르마의 폭주를 제어할 수 있는 이는,
그 시점에서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흰 빛이 터졌다.
폭주가 멎은 자리에서—
시젠타는 사라졌고, 대신 한 소년이 남아 있었다.
그가 시젠이었다.
시젠타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오 년.
소년은 자라 있었고,
상단은 여전히 그날을 설명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소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럼, 나는 레이튼으로 가야겠어. 시젠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겠는데.”
“‘순례’를 시작한단 말씀이십니까?”
“하다온. 나는 ‘순례’를 시작해야 해. 오백 년 전 내가 끝마치지 못했던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 그래서 그 일에 대한 도움을 바랄 뿐이야.”
“-알겠습니다. 필요한 것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시젠. 난 피곤하니 오늘부터 내 옆에서 자.”
짧게 시젠의 거취를 정한 이안이 벽난로 옆에 드러누웠다.
그녀는 심드렁한 눈으로 시젠과 상단주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명백한 축객령에, 시젠과 상단주는 방을 나왔다.
“당신은 왜 나오십니까.”
“저는 필요한 것을 준비하러..”
“그럼 따라오십시오.”
시젠과 상단주가 티격태격하며 준비하는 것을 넘겨짚으며, 이안은 진주 귀걸이를 매만졌다.
포르르, 소리와 함께
머메이드 퀸 레이니가 작은 거품이 되어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레이튼에 갈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
그쪽과 연결되는 권속은 누구지?”
레이니는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거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레이튼과 연결된 해룡은, 지금 없어.]
“없다고?”
[레이튼에 있던 해룡들은 모두 죽었어, 이안.]
이안의 손이 멈췄다.
“무슨 말이야. 레이튼의 해룡들은—”
[시젠타가 사라진 건, 그 해룡들을 설득하러 간 뒤부터야.]
잠시의 침묵.
“거기에 있던 해룡의 이름은 뭐지, 레이니?”
[아나드와 아수드.]
이안은 눈을 내리깔았다.
“가장 온순했던 해룡들이군.”
[그래. 레이튼을 조율하던, 아직 어린 해룡들이었어.]
아나드와 아수드.
그들이 가장 염원했던 것은 단 하나—
아이였다.
아이를 바랐기에,
그들은 아이처럼 평온했고
그래서 더욱 온순했다.
“그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이상하게도—
아나드와 아수드는 오 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
그래서 나도, 레이튼으로 가는 바닷길을 알지 못해.]
이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장 온순했던 해룡들.
가장 먼저 사라진 해룡들.
그들이 사라진 뒤로,
해룡들은 인간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아나드와 아수드의 이야기는 알았어.
일단 레이튼으로 가려면 그곳과 가장 가까워야겠지.
여기는 연이니까. 어떻게 가야 빠를까?”
[음. 7대 도시를 거쳐야 할 거야.
거기 말고는 레이튼에 닿을 바닷길이 열려 있는 곳이 없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려면 그 도시들을 지나야 해? 더 빠른 길은 없나?”
[미안하지만 이안, 나도 바닷길을 모두 아는 건 아니야. 안전한 길은 그 길 뿐이야.]
“-어쩔 수 없군.”
이안의 이마가 찌푸려짐과 동시에- 레이니가 대답했다.
[그리고 이안- 어차피 갈 수 없어.
네가 연에서 깨어났으니까. 레이튼과 가장 먼 곳에서 깨어난 네가 잘못한 거지.]
“.......”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이안은 잠시 누워 있다가 일어섰다.
“레이니.”
[응, 이안. 나 언제까지 불러둘 거야? 이제 축제 하러 가야 해.]
“너흰 하루가 멀다 하고 축제를 하잖아. 그만 열어. 이제 처음 도시를 정해야 하니까.”
[이번엔 어디를 먼저 갈 거야?]
“카르노스.”
[카르노스? 너의 보호자에게 그곳을 먼저 보여줄거라고?]
“그래- 나는, 카르노스 먼저 가야겠어. 거기에 내 오래된 약속이 있던 걸 방금 깨달았거든.”
[오래된 약속?]
“너를 만나기 전의 약속이야.
그러니 레이니, 너를 부르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왕의 의무를 다하도록 해.”
[기꺼이.]
웃으며 레이니가 거품으로 흩어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비눗방울 몇 개가 있다가 차례로 천천히 터졌다.
퐁, 퐁, 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