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緣)
머리를 쓸어올린 이안은 높게 묶은 머리칼을 대충 여미며 상단주에게로 향했다.
“하다온.”
“제 이름은, 아나드입니다. 아버지 해룡의 이름을 따, 아나드입니다.”
“하다온이 아니라?”
“하다온은 맹약에 묶인 이름이지요. 저는 아나드라 합니다.”
“―네 어머니가 아수드겠구나.”
“네.”
“―하다온이라고 부르지. 아나드라는 이름은 아직 부르기엔 이르니.
연에 있는 상단주 대표는 네가 다인가?”
“아니오. 더 있습니다.”
“그럼 나이트 희망자들도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당신께서 잠드신 성지기에,
더 많은 상단들과 나이트 희망자들이 모였지요.”
“그들 사이에 섞여 순례를 떠날 거야. 준비해.”
“…왜, 순례를 떠나십니까.”
아나드의 물음에 이안은 고요히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잠시 이어진 눈맞춤 끝에, 이안이 말했다.
“네가 떠올린 이유 때문이야. 질문이 끝났으면 준비해.”
“준비해 드리지요.”
하다온과의 대화를 마친 뒤, 이안은 곧장 바쁘게 움직였다.
시젠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조차 벅찼다.
“시젠. 멍하니 있지 말고 짐 챙겨. 이것도 필요해.”
“네, 네네—”
덜렁거리는 모습이 꼭 시젠타와 닮아,
이안은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을 느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젠타와 같은 버릇을 시젠 역시 가지고 있었다.
초조해지면 엄지와 검지를 붙였다 떼는 습관,
실수했을 때 본능처럼 지어 보이는 미소까지—
두 사람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아 있었다.
하다온의 시종들을 따라다니는 시젠을 바라보던 이안은
잠시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은 길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
시젠인지, 시젠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다온. 지도를 가져와.”
지도를 펼친 이안은 깃펜을 잉크에 깊게 찍어
망설임 없이 선을 그었다.
연에서 섬들을 가로지르는 대해협을 지나 카르노스로,
극지방의 알테온과 벨라니아를 통과해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도시의 끝—
소마.
그 경로를 본 하다온의 안색이 굳었다.
“―정말 이 길로 가실 작정이십니까?”
“지금 가장 빠른 길은 이것뿐이잖아.
다른 소도시를 거쳐봤자 시간만 늘어날 뿐이야.”
“하지만 이 길은—”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게 상인의 덕목이지, 하다온?”
“…알겠습니다. 준비해 드리지요.
하지만 그 길은 바람조차 없는 길입니다.
해룡조차 없는 길을, 어떻게 가실 생각이십니까.”
방 안의 공기가 고요히 가라앉았다.
불빛조차 흔들리지 않는 적막 속에서,
이안이 미소를 지었다.
비웃음인지, 확신인지 알 수 없는—
왕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내가 왜 왕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하다온은 숨을 삼켰다.
더는 묻지 못했다.
그녀의 미소가 모든 질문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하다온의 걱정을 뒤로한 채, 이안은 행장을 챙겼다.
애송이들의 무리에 섞여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여행용 짐이었다.
물론, 그 애송이들의 ‘위장’이라는 발상은
순전히 시젠의 것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