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幕間)

순례는 다시 시작되고

by Rachel

<창세기> 中

처음에, 바다는 끝없는 심연이었다.

별빛이 스며들지 못하는 검푸른 심연 속에서, 파도는 아직 이름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 생명이 있었다.


고요 속에서 숨 쉬는 자들, 바람과 물결을 품은 권속들이 있었다.

인간은 그 행성을 넵튠이라 불렀다.

하늘의 언어로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이름.

그러나 권속들은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끝없는 파도의 어머니, 혹은 심연의 품.


넵튠은 두 이름을 모두 지니며, 인간과 바다를 함께 품었다.



그곳에서 최초의 왕이 태어났다. 바다의 사랑을 받아 불멸을 선물받은 자.

그는 모든 존재의 목소리를 듣는 소통자였으나,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은 읽을 수 없었다.

그 사람은 그의 수호자였다. 수호자는 신의 사랑을 거부하고, 필멸을 잃었다.

그는 끝내 죽지 못한 채 살아야 했고, 왕은 끝없이 순례를 반복해야 했다.


서로를 사랑했으나 말하지 못했고, 서로를 알았으나 읽지 못했다.

그래서 넵튠에는 순례가 끊이지 않았다.


인간의 죄가 다시 일어나는 곳마다, 왕의 발자취와 수호자의 그림자가 겹쳐 흐른다.

사랑은 죄였으나, 죄 또한 사랑이었다.


바다는 그 침묵을 기억하며, 지금도 파도는 두 사람의 순환을 노래한다.


바다에 뜬 달이 왕처럼 세상을 비출 때,

그 곁에 드리운 그림자는 언제나 수호자였다.

그리하여 달과 그림자는 파도 위에 겹쳐지고,


넵튠의 바다는 지금도 두 사람의 순환을 노래한다.




〈연(緣) ― 세계의 배꼽〉

바다는 언제나 이어져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물결이 서로를 부르며,

마침내 한 지점에 모여드는 곳.

연(緣).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자리.


오래 전, 설문대할망이 잠든 듯 누워 있다가 옷자락을 풀며 세상을 열었다 한다.

그때 흘린 눈물은 바다가 되었고, 그 바다에서 해룡이 태어나 길을 지켰다.


그리고 해룡의 숨결에 젖어 나온 작은 생명들은 아르마라 불리며 바닷길을 오갔다.



연은 바다의 기억이자, 시작의 상징이었다.


창세의 눈물과 숨결이 아직 남아 있는 자리.

누구에겐 성지였고, 누구에겐 순례의 첫걸음이었다.


그 날, 바다는 다시 한 사람을 불러올렸다.

오랜 잠 속에 가라앉아 있던 인간의 왕, 이안.

회색 머리칼이 파도와 섞여 흔들릴 때, 그의 눈동자는 바다와 닮아 깊고 멀었다.

숨결 사이로 스미는 바람은 속삭였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룡은 여전히 바닷길을 지키지만, 인간은 여전히 죄를 되풀이한다고.



이안은 눈을 감았다.

바다의 심장이 다시 뛰고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순례는 또다시 시작될 것이며,

자신은 그 길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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