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가족모임

(feat.다음날은 추웠다)

by Rachel

썸네일로 쓰인 사진은 우리 모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체 사진이었습니다.

다음날은 너무 추워서, 다들 패딩을 찾아 입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의 마계 친구들, (이번엔 빛나가 빠졌지만) 희야, 지나, 써니를 포함해

포항 사는 친구와, 구미 사는 친구, 평택에 사는 친구들 가족동반 모임이었습니다.

속리산 기슭의 '더 하루 펜션'에서 하루 머물면서

고기도 구워먹고, 마시멜로도 구워 먹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음, 여행기를 쓸 때는 역시- 시간의 흐름 따라 가는 게 좋겠지요?

그럼, 시곗바늘을 돌려 앞으로 가볼게요.




때는 12월 20일의 아침,
10시부터 나는 분주하게 짐을 쌌다.

전날에도 열심히 짐을 쌌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았다.

아이와 함께 짐을 하나씩 줄이며
이건 가져가고, 저건 두고—

그렇게 구분을 하고 있을 때,

산적이 말했다.

“이제 출발한다?
가는데 3시간이라는데,
휴게소 들르면 한 5시간쯤 걸릴 거야.”

“응. 알았어.”


아이와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
나는 들뜬 마음으로 차 뒤에 탔다.


우리 곤죠는 제일 먼저 올라타
어서 가자고 재촉하고 있었다.

윗지방인 속리산은 춥다기에
옷을 단단히 입혀 자리에 앉혀 놓으니,

내 새끼가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팔불출인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곤죠는 언제 도착하냐며
아빠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내 차 멀미로 잠들어버렸다.


산적이 혼자 운전하는 게 힘들까 봐
나도 잠들지 않으려 했지만,

차 멀미는 결국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었다.



눈을 뜨니, 첫 번째 휴게소였다.

휴게소에서 삼십 분쯤 시간을 보내며
휴게소 명물이라 생각하는 통감자구이와 핫바를 먹었다.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기분을
우리 가족이 조금씩 즐기고 있을 무렵—

운전하느라 고생했던 산적은
구름과자를 먹으며
혼자 속을 풀고 있었다.


곤죠는
통감자구이보다는 핫바,
핫바보다는 가챠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곤죠의 용돈 중
이만 원이 쓰였다.



첫 번째 휴게소에서 속을 든든히 채운 탓일까,
눈이 쉽게 감기지 않았다.

두 번째 휴게소까지는 텀이 꽤 길었고,
그 사이 곤죠는 어느새 잠들어
쌕쌕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휴게소에 차를 세우자
곤죠는 살며시 눈을 뜨더니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혼자 씩씩하게 볼일을 보고 나오는 모습이
괜히 예뻐서
눈가에 뽀뽀를 한 번 해주고,

가챠를 하고 싶어 하는 곤죠를 위해
휴게소를 한 바퀴 돌았다.

하지만 마음에 쏙 드는 건 없었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뽑기 집게 하나를 고른 뒤

두 번째 칠곡휴게소를 떠났다.

물론,
내 손에는 먹거리인 젤리가 들려 있었다.

쫀득한 젤리를 보니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지만,

일단은 그냥 젤리가 먹고 싶어서 샀다.




세 번째 휴게소를 지나
국도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조금 울렁거렸다.

아니,
이럴 수가 있나.

속리산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너무 길었고,
무엇보다 너무 구불구불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는데,
우리가 넘어온 길이
‘속리산 꾸부렁길’
무려 열두 개였다고 했다.

나는 그게 초모랑마(히말라야) 열두 봉을
넘는 것보다
더 험하게 느껴졌다.

차에 타고 있는데 멀미를 하다니.
그만큼 길은 끝없이 꺾였고,

거기에 안개까지 껴서
우리는 꼭
미스트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아무튼,
그런 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더 하루 펜션.

밖을 보니
낯익은 남정네들이 모여
구름과자를 먹고 있었다.


어?
포항 걔 아닌가?

어라,
구미 걔도 있나?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미 친구는
딸내미를 데리고 왔을 테고,

포항 친구는
극 I 성향의 와이프를
데려오지 못해
혼자였을 텐데—

그럼,
남은 두 사람은
누구지?


그러고 보니
한 명은 낯익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누굴까, 하다가

아.
지나 남편분이구나—
그제야 알아챘다.

그리고 나서야
남은 한 명이
희야 남편분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알아채는 게 좀 늦었지만,
어쨌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리가 꼴찌였다.

평택, 포항, 구미,창원, 울산, 울산-언양까지.

이렇게 모였으니 늦은 것도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곤죠가 있었고,
곤죠는 아이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린 축에 들었으니까.


모인 아이들은 여럿이었고,
그중 곤죠는
세 번째로 나이가 많았지만

평균 연령으로 따져보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여덟 달 된 아기도 있었기 때문이다.


랜선 이모로
이미 많은 팬을 보유한

승윤이와 승유, 그리고 구미 친구의 딸램 아림이.

그리고 희야의 딸과 희야의 아들내미까지.

나이는 제각각이었지만
아이들은 만나자마자
꺅꺅거리며 놀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며
역시
아이들만큼
적응이 빠른 존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끼리 인사를 나눈 뒤,
간단히 고기를 먹을 준비를 하기 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가장 걱정했던 건,
지나 남편분과 산적이
오늘 처음 만난 사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포항 친구도,
구미 친구도,
평택 친구도
모두 초면이었으니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드는 산적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아, 역시 산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기를 구우려 했지만
생각보다 날이 점점 더 추워졌다.

결국 아이들과 여자들은 안에 남고,
남자들만 밖으로 나가
고기를 굽기로 했다.


그런데 의외로,

산적이 먼저

고기를 굽고 있었다고 했다.


“자기가 고기를 잘 굽는다”며
집게를 집어 든 산적은
제법 열심히 고기를 구웠고,

실내에서 고기를 받아든 우리는
말없이 고기를 먹기 바빴다.


물론,
아이들 몫은
고기가 아니라
마시멜로우였다.


아이들은 처음엔
까맣게 재가 묻은 마시멜로우를
살짝 경계했지만,

내가 먼저 한 입 먹는 모습을 보여주자
다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며
금세 좋아했다.


마시멜로우를 먹는 아이들을 보며,
다들 고기 칭찬을 하는 바람에
내 어깨가 위로 쑥쑥 자라나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 내 산적이구나.


그러나 우리 산적과는 달리,
곤죠 왕자는
오늘 유난히, 착하게 자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잠들 때도
곤죠 왕자는 좀처럼 잠들지 않아,
나는 옆에서 끝까지 함께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고기를 굽고 들어오는 모습만 보고

지나 남편분과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그땐 조금 더 많이 이야기해야지.


흐뭇하게 웃으며
맥주를 물처럼 마시다 보니
어느새 얼굴이 발갛게 익어 있었다.

달아오른 얼굴들 사이로
친구들의 모습이 보이니
괜히 기쁨이 솟았다.


헤헤,
웃으며 계속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군고구마 타임이 되었다.

고기를 다 굽고 들어온 산적은
또다시 열심히 술을 타 마시다가
결국 취해버렸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다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나 취했다, D.
한… 70퍼센트 정도 취했어.”

그래서 산적을 방에 눕혀두고
다시 나오는데,

구미 친구가
이미 잠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일어나. 놀자.”

그냥 한마디 했을 뿐이었는데,
설마 깰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구미 친구는
그 한마디에 정말로 눈을 뜨더니
다시 나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내일 운전도 해야 하는 친구였는데,
그렇게 만들어서 조금 미안해졌다.

결국 나는 구미 친구를 깨운 걸 끝으로
더는 술을 마시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은 숙취의 연속이었다.

다들 얼마나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얼굴 상태가 하나같이 엉망진창이었다.

반면, 밤새 푹 잔 어린이들은
모두 쌩쌩해져서 “엄마! 아빠! 일어나!”를 외치며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강제로 깨워진 어른이들은

띵띵 부은 얼굴로

하나같이 라면을 찾았다.


세상에,
육개장 라면이 그렇게 그리울 줄이야.


물을 붓고 기다리는 삼 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질 만큼, 숙취의 향기는 짙었다.




숙취에 시달리는 얼굴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저 사진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
사진을 들여다보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쿡쿡 웃으며 먹었던 고기와,
함께라서 더 좋았던 시간들.

기분 좋게 마시던 맥주와,
함께해서 좋은 사람들과의 기억은

각자의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한 번쯤 일탈을 하면
그 기억이 오래 간다고들 하던데—


나의 일탈 같은 속리산 여행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2026년에도 시간이 맞아
다들 다시 보게 된다면 좋겠다.


그땐 또,
함께해서 좋았던 시간들을
함께해서 좋은 사람들과
다시 나눌 수 있을 테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자는 동안 도착한 별, 100과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