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노스(Carnos)
“카르노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시의 입구부터, 이안은 가늘게 눈을 떴다.
환영을 하는 사람은 도시 안내인이었다.
하다온이 보낸 일행은 먼저 도시 안으로 들어갔기에, 처음에는 일행의 환영인 줄 알았으나—
완장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카르노스의 안내인이 맞았다.
이안은 그를 보곤 아무 말없이 뒤를 따랐다.
“소통자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도시에는 무슨 일로..?”
굽신거리는 안내인을 보며, 이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놓고 경계하는 모습에 시젠이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순례길을 도는 견습들입니다. 그래서 그렇습니다만, 도시의 권속들을 보여주세요.”
“견습이요? 정식 소통자가 아니신가요?”
“-이거면 되나.”
하다온이 챙겨준 패를 꺼내 보여준 이안은,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렸다.
안내인은 패를 양손으로 받아들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건 진주패가 아닙니까. 견습이 이런 패를 들고 있지는 못하는데!”
“말이 많군.”
짧게 잘라낸 대답과 함께 이안은 발걸음을 옮겼다. 곧장 향한 곳은 투기장이었다.
“아니, 그 쪽은 소통자께서 가실 곳이 못 됩니다!”
당황한 안내인이 따라붙자, 시젠은 묘한 냄새를 먼저 감지했다.
피 냄새였다.
짙게 스며든 피와, 사람의 살기가 뒤엉켜 바람을 타고 퍼졌다.
보통의 소통자라면 질색하며 발길을 돌렸을 법한 곳을, 이안은 오히려 여유 있게 걸어갔다.
왕의 풍모— 시젠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같이 가셔야지요! 이곳은 안내인 없이 다니면 안 됩니다요!”
안내인이 종종거리며 따라붙었지만, 시젠의 시선은 이미 도시 사람들에게 향해 있었다.
과일을 파는 상인들의 얼굴, 노점상 옆에 앉은 아이의 얼굴.
모두가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표정이 없는 얼굴. 두려움이 비어 있는 얼굴.
그러나 그 눈은 낯선 이들을 향한 적의로 얼룩져 있었다.
“이안 님.”
“알고 있어. 그러니 서둘러야 해. 지금도—”
말끝을 삼킨 이안이 안내인에게 물었다.
“투기장의 최상층이 어디냐.”
멀리서 북소리와 쇳소리가 뒤엉켜 울려왔다.
환호인지, 비명인지 모호한 소리가 바람결에 묻어왔다.
분노의 도시, 카르노스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주패로도, 최상층은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안내인이 딱 잘라 말했다.
그러자 이안은 무심하게 돈주머니를 내밀었다.
“이래도 못 들어가나?”
“이건…”
주머니에는 ‘딥 블루’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안내인은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잠시 기다려 달라더니 자리를 떴다.
곧 다른 안내인이 배정되어 다가왔다.
“어디로 가십니까?”
“듣지 못했나? 최상층이다.”
“최상층은 아무나 들여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붙은 거 아니던가?”
짧게 잘라내는 대답에, 안내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꽤 노회하시군요. 견습은 아닌 듯합니다. 성함이…?”
“알 필요 없어.”
이안은 시선만으로 시젠을 불렀다.
시젠이 칼을 뽑아 그녀의 손에 건네자, 이안은 그 칼을 안내인의 목젖에 대며 나른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예쁜 상처 하나쯤 새겨주지.”
안내인은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환영 인사가 제법 거친데, 소통자?”
그 웃음을 보며, 이안의 입가에도 비슷한 빛이 스쳤다.
그녀는 칼을 시젠에게 다시 돌려주며 중얼거렸다.
“…아직도 내 약속을 지키고 있었구나, 칼스.”
안내인의 표정이 단숨에 바뀌었다.
그리고 깊숙한 존칭이 떨어졌다.
“오랜만이오, 누님.”
칼스의 안내를 받아, 이안은 최상층의 사무실로 옮겨졌다.
문이 닫히자, 칼스가 낮게 웃으며 물었다.
“알고 있었소? 내가 누님이란 걸.”
“연에서 오는 ‘딥 블루’의 상행이라면, 나 말고는 없겠지.”
“하긴… 연은 우리와 동맹이라도, 정작 발길을 내민 적은 없었으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안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붉은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는 도시—
검은 연기 같은 그림자가 골목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도시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시젠타 형님이 사라진 그때부터요. 그 이후로 흉포함이 자리를 잡았지. 행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밤이면 모두 문을 닫아걸고 떱니다. 그믐밤이면 종소리와 함께 꼭 누군가 죽어나가고요. 권속들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 울부짖음을 듣고도 아무도 밖으로 나서지 못합니다.”
“그 전엔?”
칼스가 눈을 깜빡였다.
“예?”
“분노만으로는 이 모양이 되지 않아. 두려움이 있다는 건, 분노하는 자와 두려워하는 자가 둘 이상이라는 뜻이지. 전조가 있었을 거다. 작은 사건 하나쯤은 있었을 텐데.”
칼스의 얼굴에 불안이 스쳤다.
“…있었습니다. 누님 말씀대로. 처음엔 사소한 일이었죠. 권속이 이유 없이 폭주한다든가, 검투사들이 무대 위에서 제정신을 잃고 서로를 찢어 죽인다든가. 그때는 모두 단순한 사고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게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르드와 관련된 일인가?”
“아르드라니요?”
“그 이름을 모르는 것을 보면- 약속은 반만 지켜진 모양이군, 칼스. 네 아버지가 말해주지 않았더냐. 아르드는 이 도시를 조율하는 해룡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하지만, 아르드란 이름을 들으니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미리암이라는 이름이지요.”
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이름을 가진 행인이 가장 먼저 희생되었습니다. 아무도 왜 그녀가 죽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날 이후 도시의 공기가 변했습니다. 분노와 두려움이 동시에 퍼져나갔습니다.”
“.......”
미리암이라는 이름에 안색이 변한 이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오래 전, 지켜주지 못한 존재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 것일까.
잊지 못한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올까.
분노와, 후회에 잠긴 주먹이 잠시 떨리다, 편 손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잔잔하게 손을 쓸어주듯이 지나가는 바람에, 이안은 한숨을 쉬며 다시금 물었다.
“미리암이란 행인이 사라진 곳이, 어디냐.”
“최상층, 미궁입니다.”
“그리로 가자.”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 시젠은 희미한 피냄새와 불길함을 읽었다.
떨리는 이안의 손 끝이 현장을 매만지는 동안, 시젠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불길함을 같이 느꼈다.
[기록을, 보여줘.]
이안이 손바닥을 대자, 바닥에 스며든 피와 울음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러나 기록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웅― 불길한 진동과 함께, 바닥에서 붉은 구체가 솟구쳤다.
피와 원한이 엉겨붙은 덩어리, 미궁이 토해낸 분노의 심장이었다.
“누님!”
“이안 님!”
두 사람이 동시에 손을 뻗었으나, 구체는 순식간에 이안을 삼켰다.
펑―
붉은 파편이 흩날리며 사라진 자리.
남은 건, 그슬린 바닥 자국과 회색 머리칼의 두 세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