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것)
처음 신경정신과 예약을 하고,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힘들었던 질문을 기억한다.
그건,
‘용서’라는 개념이었다.
나는 용서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들을
정말로 용서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고,
그래서 조금씩, 선생님의 말을
삐뚜르게 듣기 시작할까 봐 초조했다.
그때의 나는
용서가 회복의 끝에 있는 말인지,
아니면 회복을 증명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자격증 같은 것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다만 분명했던 건,
아직 너무 아픈데
‘용서’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나를 배신하게 될 것 같다는 감각이었다.
선생님께 가장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듣고도… 저는 엄마를 용서해야 하나요?
내 엄마라서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아직 모든 것을 듣지 않았어요.
그리고 D씨에게 용서하라거나 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힘든 게 용서거든요.
그러니까, 충분히 회복되고 난 뒤에 생각해도 괜찮아요.”
아아,
그때 나는 눈물이 터졌다.
바보처럼.
선생님은 이어 말했다.
“사람들 중에서, 용서를 잘 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죠.
마더 테레사나, 김수환 추기경 같은 '성인'들이에요. 그런 사람은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죠.
하지만 우리는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평범한 사람이 하기 힘든 결정 중 하나가 용서입니다.
마음 깊이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행동을 이해해주는 것인데,
제가 보기엔 그 용서라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행동이거든요.
그걸 밥먹듯이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신선이나 성인일 거예요.
그리고. 용서는 D씨가 하는 거지, 다른 사람이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용서를 하려면 이해가 필요하고, 마음 깊이 이해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용서가 됩니다.
지금 사과했으니까 나를 용서하라는 말은, 가해자의 마인드지 D씨를 배려한 마음이 아니에요.
용서는, 지금 말할 수 없는 단계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
늘 나는 그 두 마음이 상충했다.
용서할 수 없는 엄마-
하지만 엄마라서 용서해야 하는 걸까.
그 번민과 힘듦이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일까
용서는 내 마음에 달렸다는 말이,
내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그 말이-
너무나도 내게 안심을 주었다.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D씨, 오늘은 여기까지만 상담하겠습니다.
오늘 D씨가 많이 울었어요.
이제 가서 마음을 좀 추스르고,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약 잘 챙겨 드시고요.
한 달 뒤에 다시 봐요.”
나의 긴 치료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말은, 조금은 서운했다.
한 달 뒤, 선생님을 만나면 뭐가 달라져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진료실 밖을 나갔다.
진료실을 들어오기 전보다, 들어온 후가 더 후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날 이후로 나는
용서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게 되었다.
그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