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아이와 눈높이 맞추기)
아이를 훈육할 때,
소리를 한 번도 지르지 않는 엄마가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아이를 바로 세우겠다는 마음이 앞설 때면
목소리가 먼저 높아진다.
그런데 산적은 다르다.
아이와 있는 시간 동안
그가 큰 소리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아이의 눈을 맞추고,
의사를 묻고,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그 모습이 꼭 오은영 박사님 같아서
나는 종종 묻곤 한다.
“어떻게 했어?”
그러면 산적은 늘 비슷한 대답을 한다.
“아이랑 있을 땐, 화를 내지 않는 게 중요해.
모르면 배우는 단계일 뿐이야.
무조건 몰아붙이면 그 순간만 무서워서 따르는 아이가 될 뿐이야.
내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아이는 따라와.”
말은 쉽다.
“그게 되냐고. 나는 안 되는데.”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면서도
사실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질까.
왜 저 사람처럼 못할까.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그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한다.
나도 같은 시기를 겪었으면서
아이에게는 늘 조급해진다.
“여보. 왜 난 당신처럼 안 될까?”
산적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초조해 하고 있어서 그래.
당신은 늘 긴장하고 있잖아.”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나는 아이를 바로잡고 싶은 게 아니라
아이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초조해진다는 걸.
그래서 목소리가 먼저 높아지고,
그러다가 결국 아이에게 화를 낸다.
오늘도 나는 완벽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떻게 해야 덜 상처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은 되었다.
어쩌면 훈육의 자세란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먼저 나를 돌아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모범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모범을 고민하는 사람은 되었다.
그게, 내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자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