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5. Butter-fly

(feat. 디지몬 어드벤처 ost _ 정용화&호시)

by Rachel

Intro.

그래, 현실의 감각은
언제나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해야 할 일들,
지켜야 할 약속들,
책임이라는 이름의 무게.


그 모든 것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나는 날아오르고 싶다.

별처럼,
나비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 분명히 달려 있는
내 날개를 믿으면서.




1997년, 나의 어린 시절.

우리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월요일, 화요일 저녁은 무조건 6시 전에 집에 들어가기.

놀이터에서 술래를 피해 도망치다가도
누군가가 외쳤다.


“야, 오늘 디지몬 하는 날이야!”

그러면 우리는
모래 묻은 손을 대충 털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그때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보다
‘만화영화’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시절이었다.


일본에서 수입해온
디지몬 어드벤처를 알게 된 아이들은
모두가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떠들어댔다.


나는 늘 동생과 리모컨을 두고 싸웠다.
결국 늦게 틀어서
오프닝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오랫동안
“디지몬 친구들, Let’s go Let’s go 세상을 구하자!”
그 후렴만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건 디지몬 노래의 트랙 중 하나였고,

오프닝은 Butter-Fly였다는 것을.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정용화와
호시가
이 곡을 다시 불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노래는
어린 시절의 영웅담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에게 더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까.

세상을 구하겠다 외치던 아이들보다,
하루를 버텨내는 어른들에게.

밤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날개가 찢어진 것 같은 사람들에게.




예전에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말이 멋있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도
세상을 구하자는 노래를 부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하루를 무사히 건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감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다시 듣는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조용히 가늠해 보기 위해서.





Outro.

현실은 늘 편안한 공간이 아니다.
황홀한 배경음도 깔려 있지 않다.

하지만
내 안의 꿈이 나를 받쳐주기에,

상처 난 날개로도
다시 한 번 바람을 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더 높이 날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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