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카레

(feat. 맛있었지만, 떨떠름했던)

by Rachel

나는 점점 산적을 피해다니기 시작했다.

동아리방에서도,
학과에서도.


결국 참지 못했는지,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산적이 나를 붙잡고 물었다.

“너, 왜 그래?”

“뭐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내가 네 감정을 안다는 걸,
어쩌면 알아차렸다는 것까지
내 눈빛에 다 비칠 것만 같았다.


“너 눈도 못 마주치고,
요즘 나 피해다니잖아.”

“……아무것도 아니야.”

“너 무슨 일 있지?
너 거짓말 진짜 못해. 다 티 나.”

“……”


나는 대답 대신,
잠시 말없이 산적의 눈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히는—
말을 시작하려면
뭔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한참 망설이다가,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어, 우리 밥 한 끼 먹자.”

“진짜?”

그 말에 산적의 표정이 순간 조금 밝아졌다.

“응…… 근데 우리 둘이서만 먹지는 말고.”

잠깐의 정적.

산적이 곧바로 말했다.

“……그건 싫은데.”

“같이 밥 먹기 어색해서 그래.”

“왜 어색해? 너 나한테 잘못한 거 있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시선을 피했다.
이유를 말하려 하면,
전부 들켜버릴 것 같아서.

“그런 거 없으면, 오늘은 우리 둘이 먹자.”

“어… 그럼 동아리 후배들이라도 껴서…”

“아니, 우리 둘이.”


얼굴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나는 결국 산적을 따라 학교 앞 인도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타지마할.
이름도, 인테리어도, 공기마저
진하게 카레 냄새가 배어 있는 곳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익숙하지 않은 향이 훅 끼쳐왔다.

나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

……여기?

나는 카레를 못 먹는다.


그건—
산적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았고,
오히려 조금 들뜬 얼굴이었다.

“여기 괜찮지?”

괜찮을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나 카레 못 먹잖아.”

내가 결국 말하자,
산적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온 건데.”

합숙 때,
나는 카레를 잘 못 먹는 걸
그도 분명 봤을 텐데.

왜 하필 여기일까.

나는 말없이 산적을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한국식 카레는 못 먹을지 몰라도—”

잠깐 말을 고르고,

“그거 트라우마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없애주고 싶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산적의 눈을 바라봤다.

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받아낼 수도 없는 눈.


맑았다.

그래서, 내가 더 비겁해지는 것 같았다.

저렇게까지 아무 계산 없이 다가오는 마음에
나는 무엇으로 답해야 할까.

상처 주지 않고
거절하는 방법이,
정말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결국 시선을 떨궜다.

더 보고 있으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

조용히, 카레를 먹었다..


그날의 카레 맛은, 지금도 기억난다.

참 얄궂게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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