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관계의 언어이다
"오늘 정말 왕 짜증 나. 망했요"
아이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거칠고 강한 표현에 익숙한 아이들의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또래와의 관계가 더 중요한 중학생 아이들은 금세 밝아지다가도 어두워지는 변덕스러운 감정상태를 보인다. 친하던 무리에서 틀어진 관계는 SNS의 관계망뿐 아니라 아이의 말과 얼굴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그 아이의 짜증 난다는 표현에는 어떤 감정이 들어가 있을까.
그 아이는 끊임없이 핸드폰을 확인하고 편의점에서 사 온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쉽게 돈을 쓴다.
공부한다고 가는 학원이나 스터디 카페에서는 자신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한 펜 놀림만 반복된다.
아무도 그 아이에게 너의 감정이 어디에서 왔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마음일지 물어보지 않은 듯싶다.
그 아이 또한 그 감정이 무엇이며 어떻게 다뤄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외로움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뿌리에서 나오는 감정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외로움은 다양한 모양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의 짜증 난다는 말을 따라가면 자기감정을 몰라 준다는 서운함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아쉬움과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틀어진 것에 화를 내고 있다. 그 감정은 인정받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아이는 계속 깊은 한숨과 답답한 얼굴로 책을 바라본다. 그러다 작은 관심에 소리 높여 말하고 간식을 먹으며 좋아한다. 종 잡을 수 없는 그 아이의 모습은 끊임없는 관심을 원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외로움이 조용하게 스며들어 있다. 어떤 이는 외로움을 분노나 질투 그리고 불안으로도 표현한다. 이 감정이 혼란스럽게 함께 존재하기도 하다. 잠재되어 있든 표현되든 외로움에는 여러 모습이 있다.
허전함, 소외감, 무력감, 그리움, 공허함, 질투, 조용한 분노, 무관심
아마 모두 경험해 봤을 것이다. 물론 이 감정들만 경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의 상태에 따라 이런 감정이 불쑥 올라오게 되면 짜증 난다는 말로 표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을 대하는 방법은 대부분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혼자만의 고립감을 선택하거나 쇼핑을 하거나 미친 듯이 운동이나 일을 하기도 하고 음주가무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거나 연애를 하기도 할 것이다. 잠시 외로움이 그림자가 되어 보이지 않게 되다 또 다른 감정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럼 왜 이런 감정들은 우리들을 혼란스럽게 할까
혼자 있거나 관계 속에 있어도 올라오는 이 감정들은 왜 생길까
말이 통하지 않는 단절감, 마음이 전달되지 않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 함께 있지만 불편한 어색함,
연락을 기다림, 외롭지 않게 과도하게 애쓰는 상태, 아무도 묻지 않고 자신도 말하지 못하는 침묵의 무거움,
나만 외로운 건 아닌지에 대한 부끄러움, 자책, 약해 보일까 숨기는 마음, 수치심, 어떤 감정인지 몰라 느끼는 혼란함, 두려움, 무의미함, 고립감
이 감정들은 자신과의 감정이자 관계와의 감정이다.
외로움은 단순히 외롭다는 언어를 넘어 자신과 상대에 대한 관계에서 온 것이다.
지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어린 시절 나의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한 나의 모습이 보인다.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몰랐고 누군가 물어본 사람도 없었다.
그냥 조용하고 얌전히 있으면 그것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말하면 엄마가 힘들까 봐 거절당할까 봐 말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어린아이를 만나고 지금의 너무 애쓰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너무 빼곡하게 채운 나의 24시간을 보게 된다.
과도하게 애쓰는 나일까. 책임을 다하는 나일까. 내 삶을 즐기고 있는 나일까. 꿈을 찾아가는 나일까.
잠시 멈춰서 그 실체를 살펴본다.
이전과 달라진 것은 스스로 자신을 관찰하고 표현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고민과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조용하지만 얌전하지는 않다. 때론 수다스럽게 이야기도 한다. 과도하게 애쓰지만 스스로에게 휴식을 허용한다. 책임을 다하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선택을 한다.
외로움의 다양한 모습이 내 앞의 그림자로 나타날 때가 있다.
해뜨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해 지기 전에는 가장 길다. 낮 12시에는 머리 위에 태양이 떠 있기에 거의 그림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외로움의 모습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외로움의 감정을 인정하면 정오의 그림자처럼 잠시 짧게 있다 사그라진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림자를 항상 달고 있는 사람도 없다. 그림자의 모습이 늘 같은 사람도 없다.
그림자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그림자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 것만은 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면 매번 달라지는 그림자의 모습을 반겨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외로움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지금의 나는 어떤지를 살펴본다면
오히려 더 풍성한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
상대의 마음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림자를 가진 이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