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회복의 기록, 성장의 축적

by 김혜신

2.58kg

20일 일찍 태어난 아기는 간신히 인큐베터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크기로 엄마의 품에 안겼다.

아들을 더 선호한 시대였기에 '딸이에요'라고 간호사는 아쉬워하듯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미 초등학교 아들들을 키우고 있던 엄마에게 그 딸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 딸은 자라 결혼하고 자신의 자녀들을 낳았다. 3.1kg의 딸과 3.5kg의 아들을 품에 안으며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자녀들은 자라고, 이제는 엄마보다도 더 훌쩍 컸다. 그 사이 아이들 사진 앨범과 유치원 기록장 그리고 일기장도 쌓여갔다. 아이들에 대한 기록은 머리와 마음뿐 아니라 기록으로도 남게 되었다.


사람들을 "시간이 약이다"라고 한다.

마음과 물질로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시간이라는

또 하나의 변수 속에서 변화한다. 어떤 기억들은 잊히고, 왜곡되고, 묻히고, 비틀어진다.

반대로, 어떤 기억은 치유되고 의미를 찾아 새로운 열매를 맺기도 한다.

그 과정은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는지,

어떤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기억이 부여한 힘이다.

반면 기록은 저장이기보다는' 쏟아내는 것'에 가깝다.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마치 무거운 배낭을 뒤집어 내용물을 바닥에 펼쳐 보듯이 말이다.

기억과 기록의 묘한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 기억하고자 하는 부분을 자신의 필터로 거른 후 자신의 감정과 연결하여 기억한다. 그 기억은 감정에 따라 왜곡되기도 하고, 자신의 신념을 강화시키거나 판단의 기재로 남아 많은

가능성들의 싹을 잘라 버린다. 그러기에 기록을 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부터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것까지 많은 다양한 기록이 필요하다. 말로 쏟아내는 감정은 상대에게 영향을 끼친다.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 감정적으로 뱉은 말은 상처가 되기 쉽다.

말은 뱉는 순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말하고 후회하느니 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다.


요즘 나는 매일 기록을 하고 있다.

나의 감정의 기록과 일상 기록 그리고 독서필사와 글쓰기까지 살면서 지금처럼 이렇게 많이 쏟아내고 있었던 적은 없다.

그런데 기록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실을 느낀다.

기억의 배낭을 뒤집을 수록 계속 무언가가 나온다.

때론 너무 오래되어 곰팡이가 핀 것처럼 배낭에 딱 붙어있던 기억이 떨어져 나올 때도 있다.

잊고 있던 돈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반가운 기억도 있다. 먼지와 쓰레기도 함께 나오지만 하나하나 손에 들어 다시 정리하게 된다. 섞여있던 귀중품들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듯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 무엇을 비워내야 할지가 선명해진다.


감정 일기를 통해 내가 눌러 왔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괜찮다'며 누르고 있는 감정이 기록을 통해 조용히 얼굴을 드러낸다. 그 감정을 알아주고 이야기하니 수그러진다.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단순한 갱년기로 덮이지 않게 된다. 일상을 기록하면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꿈과 관련된 흐름을 점검하게 된다.

나는 나의 든든한 지지자가 된다.


내가 쓰는 기록은 나를 위한 기록지가 된다.

기록은 나를 위한 관찰일지이자 성장일지이다.

아이들 유치원 선생님들이 써두었던 성장일기처럼, 나는 나 자신을 관찰하고 응원한다.

2.8kg의 아주 작은 아기가 자라듯, 나의 마음도 정신도 함께 자라고 있음을 느낀다.

기록은 나의 영혼에 물을 준다.


기록을 한다고 항상 햇빛 아래에서 활짝 핀 꽃처럼 밝기만 하진 않는다. 때론 비바람에 고개 숙이고 잎사귀가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기록은 그 꽃과 잎사귀를 햇빛으로 이끌어 다시 피어나게 한다.

인생은 늘 비바람만 부느 것이 아님을 알기에, 오늘의 웃음은 어제의 어둠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회복의 동력이 있다.

힘들어지면 멈추고 제자리에서 쉬다 가는 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회복한다.

그 과정은 기억되고 반복된다.

하지만 그 과정을 기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기억으로만 말한다.

말은 경험이고 그 경험은 일반화할 수 없다.

각자 자신만의 방법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기록은 다르다. 이 기록이 쌓이면 '나만의 회복법'이 하나의 자산이 된다.

기억의 기록이 쌓이면, 배낭 속의 물건과 쓰레기가 분리되듯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자신의 모습이 기록이 되며 정리되고 치유가 된다.


회복의 기록이 곧, 성장의 축적이 된다.


목,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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