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동물원

by 김혜신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 내 마음의 먹먹함이 이렇게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매달 한 달의 한 번씩 만난다는 장소가 과천 대공원이었다는 것과 동창들이 그곳에 모인다는 것만을 알았다.

점점 잃어가는 기억 속에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할 힘은 간신히 두 다리로 몇 발자국 움직이는 것 밖에는 없었다. 점점 놓치는 정신과 육신 사이에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이 너무 숨 막히도록 힘들어 그런 엄마의 모습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해 5월, 나는 엄마가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을 드려할 것을 느꼈다.

올해가 어쩌면 그렇게 만나던 동창들과의 마지막 만남일 수 있겠다는 직감에 엄마를 모시고 과천으로 향했다.


마지막 모임

엄마의 친구분들은 지극한 나이로 대공원 입구에서 서로를 반기고 있었다. 얼굴 보고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는 그 시간에는 지난 시절 함께 보낸 동창이라는 분모에 서로의 늙어감을 얹어가며 서로를 챙겨주고 있었다. 그런 친구분들을 반갑게 만나며 밝게 웃는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해 초겨울 엄마는 코로나로 세상을 떠나셨다.

비가 쏟아지는 저녁 그때 대공원에서 뵈었던 엄마의 친구분이 오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신다며 엄마의 영정에 고개를 숙이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공원 둘레길에서

그 공원을 갔다. 대공원 안까지 이어지는 길을 걸어 다닐 기력도 없었던 그때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대공원 둘레길을 걸었다. 부부가 걷는 모습도 보이고 친구 모임으로 함께 만나 벤치에서 다과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아침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 말다 하는 날씨에 5km 안팎의 길을 걸었다. 지난 시절 내게 얹어진 무게감이 지금은 미안함으로 나를 누른다. 툭치면 쓰러질 것 같이 약해진 엄마를 잘 살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몰려온다. 코끼리 열차라도 태워서 함께 둘러보기라도 할 것을 그냥 엄마를 방치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먹먹하게 밀려온다.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다녔던 그 꼬맹이가 어느덧 나이가 들어 엄마를 모시고 갔던 그곳을 이제는 혼자 왔다. 기분이 묘했다. 시간이라는 점들이 연속적인 선으로 쭉 이어져 지금이라는 현실에서 멈춰진 듯싶다. 오로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내가 지나간 시간의 향수를 흘려보내지 못하고 맡고 있는 듯싶다.

미술관 옆 동물원

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듯싶지만 시간은 나라는 존재를 어느새 중년의 나이로 만들었다. 함께 있던 이들이 하나씩 떠나고 지나간 시간들이 기억으로만 회상된다.

세월이 더 흘러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면 그때의 나의 모습은 어떨까를 떠올리기도 한다.

늘 변화는 자신을 인식 못하다가 어느새 달라진 자신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싶다. 그런 내가 늘 변함이 없는 숲 속에 있다. 초록빛 나무와 흙냄새에 진하게 현실의 감각을 느끼며 한 발자국씩 걸음을 내딛는다.

동물원 둘레길을 걷는데 표지판이 보인다.

미술관옆 동물원이라는 영화의 촬영지라는 표지판이 예전의 시간을 또 떠올리게 한다.

보지 못했지만 너무나도 유명했던 영화처럼 잘 알고 있는 듯한 가족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내가 묘하게 오버랩이 된다. 가장 사랑해야 하고 잘 알 것 같은 가족을 그렇게 대하지 못한 아쉬움이 이렇게 클 줄을 알지 못했다. 사랑했지만 어쩌면 어떻게 사랑하고 표현해야 할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나지막하게 말해 본다. '미안하구나. 더 사랑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구나. 그립구나' 그렇게 나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예전 감정의 향수가 바람에 조심스럽게 흘려가 버린다.


새로운 길

둘레길이 끝나는 길에 넓은 길이 보인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그 길을 스쳐 지나가다 다시 발걸음을 바꾼다. 미술관을 가 보기로 한다. 지나간 감정을 흘러 보내고 새로운 곳을 향한 나의 호기심을 따라가 본다. 곳곳에 보이는 조각상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작가는 무슨 생각과 의도로 이것을 만들었을까라 생각을 해 본다.

각기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표현한다. 그 표현 뒤에는 자신이 부르짖음이 있다. 그 부르짖음이 침묵이 될 때면 그 울림이 더 강하게 들려온다. 나의 소리까지 더해진다.

그 소리가 지나가면 다시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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