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의 나, 그리고 30년 후의 나를 보며

믿음의 거울 속에서 만난 나의 모습

by 김혜신

조지아의 수도 트리빌리시에서 남쪽으로 20~30km 향하면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인접한 마르네올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조지아 전체인구 370만 명 중 대략 10만 명 정도가 거주하는 지역이다. 농업이 중심 산업인 이곳의 사람들은 놀랍게도 70 퍼세트가 넘게 아제르바이잔인들이다. 마치 우리나라의 가리봉동이나 대림동에 조선족들이 많이 살듯이 이곳은 조지아 지역이지만 거의 타민족인들이 거주한다.


조지아는 한번 가봐야지라는 마음이 든 것은 최근 여행 유튜브를 통해 보았던 멋진 자연환경과도 연관이 있었다. 깨끗한 자연환경과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며 트레킹을 꿈꾸던 모습이 엊그제 같았는데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것도 단지 자연을 즐기기 위함이 아닌 다른 이유가 먼저 있었다.

조지아 선교 여정으로 오게 된 이곳에 나는 마을 속에 세워진 선교 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과 손으로 직접 쌓은 담을 둘러보며 여름 내내 수고하며 땀 흘린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배경이 되어 멀리 펼쳐진 주변 환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넓은 마당을 가득 채운 자갈은 진흙으로 가득 찬 바닥을 덮고 있었다. 그 위를 걷는 우리 발자국은 소리를 내며 이곳을 찾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우리를 그곳 선교사님들은 반갑게 맞아 주셨다.

조지아 속 이방인들을 섬기는 또 다른 이방인인 선교사님들, 그들을 만나러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은 곧 이방인이라는 타이틀을 떼고 서로를 반갑게 환영했다. 감히 몇 달 전에도 상상하지 못한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지아의 첫인상, 다시 말하면 마르네올리의 첫인상을 말하자면 19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각양각색의 차들이 다니는 모습 속에서 새 차든 헌 차든 바퀴만 달리면 "it's OK"라는 마음이 들었다. 작은 흠집은 물론이거니와 범퍼가 나가도 그냥 몰고 다니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온 것을 느끼게 되었다. 길을 걸어 다니는 동양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이들의 모습과, 익숙하지 않은 글자가 가득한 간판과 표지판을 보며 새삼 낯선 곳에 온 것이 느껴졌다. 10층 높이의 건물은 드물었다. 이곳의 마을은 시내가 아니면 거의 단독주택의 모습이다. 집 주변에는 방목된 닭들이 마음껏 걸어 다니고 여기저기에 커다란 개들은 누워있었다. 귀에 박힌 칩으로 관리를 하고 있음을 짐작하지만 집 밖에 생활하는 개들의 모습이 생소했다. 이 개들은 낮에는 여기저기에서 잠을 자고 있다. 건물 안에서도 밖에서도 말이다.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이곳 사람들과 그런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선교사님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낯선 풍경만큼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선교사님의 손이었다. 까맣게 햇빛에 그을린 손이었다. 성경을 넘기는 손이기도 누군가를 섬기는 손이기도 했다. 기도를 하는 손이기도 했지만 여름 내내 이곳 센터를 위해 작업한 손이기도 했다. 그 손의 모습으로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에서 시작된 선교여정이 이곳에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그을림을 경험하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30년을 향하는 선교 사역은 28년 전 한국을 떠난 선교사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고국을 떠나 먼 곳을 향한 그 모습을 말이다. 그 모습을 그리다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30년 전의 나는 이제 막 사회에 나가기 전 자유로운 삶을 위해 호주로 향했다. 집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그 자유가 향하는 미지의 곳을 향했다. 한 달여의 배낭여행이었지만 내가 생각한 자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다만 집과 학교만을 다니던 환경에서 나와 새로운 곳으로 발걸음 했다는 것에 자유라는 의미를 부여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믿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고 또 다른 이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걸음을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30년 전의 그 시작은 삶에 다양한 모습을 그려내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을 30년 전 나는 상상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30년 후의 모습을 내다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어떤 직업을 선택할까만 고민하던, 근시적 시각의 우울한 20대였다.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으로 움츠렸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제자리 뛰기를 열심히 하던 소심한 이였다. 관심은 나였고 그것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힘들어했다. 지금 나는 그런 나의 30년 전 모습을 겹쳐본다. 지금도 나는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렌즈를 좀 더 멀리 비춰본다. 상대를 보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 속에 담긴 그의 삶을 보기 시작했다. 상대의 삶과 나의 삶이 보이기 시작한다. 30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나만을 보던 내가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게 되었다.


앞으로 30년을 살 수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삶의 여정이 이제는 나만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게 경험한 지난 세월이 있었다. 그러기에 삶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자유를 향한 나의 삶이 여전히 자유 속에 갇혀 있다면 다시 점검해야 할 때이다. 이미 누리고 있는 자유 속에서 누리지 못하는 나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의 나는 자유만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원하고 있다.

30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다시 겹쳐 보았을 때 무엇을 느낄지 떠올려 보았다. 그러니 명확해진다. 나만을 위한 삶은 아니었다. 우리의 삶을 위함이다. 그 삶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느끼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의미 있는 삶이라는 주제에 화두를 던질 지금의 나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의 여정이 어떻게 흘러 왔는지 돌아볼 것이다.


시간은 참 짧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한 단위로 들어온다. 수많은 장면이 가득한 30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흘러간 듯하다. 수많은 단층으로 촬영된 CT처럼 모든 단면이 다양한 각도로 가득한 세월의 장면이 나의 삶이라는 결과지를 내놓는다.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 펼쳐진 결과지를 말이다.


조지아에 온 것은 조지아의 자연만을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만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아온 지난 시간들의 모습을 돌아보기 위함이었고 살아갈 모습을 그려보기 위함이었다.

내 삶의 단층이 쌓아 온 관계의 층을 다시 보기 위함이었고 새로운 측면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조지아라는 내 상상 속의 나라는 시골인 마르네울리에서의 시작되었다. 선교사님의 손과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 그리고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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