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올라르?(차 한잔 하실래요)

차 한잔으로 시작된 마음의 여정

by 김혜신

어렸을 때 종종 듣던 말이 있다.

누군가를 길에서 만나면 "어디 가니?"라는 말을 자주 듣던 세대였다.

관심을 나타내는 이 표현은 인사말처럼 쓰였다.

물론 이 말처럼 "밥 먹었니?"라는 표현이 더 흔한 이전 세대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 대신에 그냥 인사만 하거나 '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말로 지나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사적인 질문이 부담스러운 개인 중심의 사회로 흘러가면서, 서로에게 묻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 친하지 않은 이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집요한 안부를 묻는 것이 흔하지 않은 사회가 돼 버렸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누군가에게 질문을 많이 하거나 요청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실례가 되지 않으려 조심하고 가벼운 인사만 건넨다.

그게 편했고,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조지아 여행을 와서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가

“Çay olar?” 차 한잔 주실래요? / 차 드시겠어요?”였다.


이 말은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조지아어가 아니다.

아제르바이잔어다.

내가 방문한 조지아의 마르네올리에는 70퍼센트 이상이 아제르바이잔 인들이 산다.

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는 3박 4일의 여정에서 쉽게 배운 말이지만 어려운 말이기도 했다.

내 일에 집중하는 것이 편했던 내가 낯선 이에게 먼저 말을 건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에서도 “밥 먹었니?” “어디 가니?” 같은 말을 잘하지 않는데,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차 한 잔 주실래요?”라고 말하는 일은

더 큰 도전이었다.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이방인들을 잘 대접한다.

그들은 손님을 차와 음식으로 맞이한다.

시골길을 지나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Çay olar?”라는 말을 하면 대부분은 집으로 초대하며 차와 음식을 대접한다. 물론 나에게는 힘든 말이지만 함께 한 이들이 있어 좀 더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세계로 한발 내 디딘 것 같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구글 번역기로 서로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간단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차 한잔 주실래요"라고 시작된 대화는 차와 음식으로 시작해 구글 번역기로 한참 이어지다가는 침묵의 시간에 다다른다. 낯선 이들과의 관계가 아직 설 익은 밥처럼 깊은 맛을 내기에는 일반적인 이야기로는 힘들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서로의 모습에서 더 깊은 것을 느끼고 감지하고 있었다. 언어보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이때 던지는 한마디 Yaxşisan? [약쉬산] “너 괜찮아?”, “잘 지내?”는 우리가 서로 만나는 이유를 말하기도 한다.

짧은 한마디지만, 이 말에는 삶을 잠시 멈추고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인사는 단순한 안부가 아니라,

상대의 삶을 진심으로 묻는 문화적 예의이자 종교적 태도가 담겨 있다.

물론,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건네느냐,

그리고 상대의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이것은 조지아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깊고 진한 곰국처럼 우러나오는 이 한마디로 우리는 높게 쌓아 올린 방어벽을 한 번에 허물어 버릴 수도 있다.


문화도 언어도 다른 미지의 세계에 이제 한발 디딘 나보다 몇십 년을 이민족과 함께 보낸 분들이 계신다. 그들의 삶을 이해한 시간도 동화된 시간도 길었지만 "괜찮니"라는 말의 깊은 울림을 훨씬 더 이해한 분들이다. 그분들의 말의 깊이나 시선이 눈에 띄었다. 그분들도 지금의 나처럼 처음에는 '차 한잔하실래요'라고 시작하셨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이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되어 '정말 괜찮니'라고 묻는 여정에 있음을 느껴본다. 말보다 삶으로 살아내는 시간인 것이다.

너무 쉬운 말이지만 어색한 말 '차 한잔하실래요'가 '괜찮아, 잘 지내니'라는 말로 이어지는 것이 선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문화에 뛰어들지만 진정한 울림이 될 수 있는 말은 삶이다라는 느낌이다.


"차 한잔 드실래요"라는 나에게는 낯설고 어색했다. 익숙지 않는 것의 저항감에서 다시 물어보게 되었다. 과연 이렇게 해야 하나에 멈칫 한 말은"괜찮니"였다. 시작은 차였지만 진실로 묻고 싶은 것은 지금의 삶의 방향이 맞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을 하기 위한 시작이 차이 올라르였다.

그러기에 때론 낯섦에 부딕쳐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새로운 문을 여는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쉽지만 어색한 그 말이 시간이 지나면
삶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진정한 마음과 믿음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낯설고 서툰 순간을 피하지 않고 부딪혀볼 때,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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