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의 시선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작은 정류장에 몇 대 서있는 택시 중 한대와 흥정을 하고 우리 일행은 산길을 향했다. 뿌연 시야 속에 드러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으면서 그렇게 해발 2000미터의 산길을 올라갔다. 이곳은 드마니쉬의 닥아라크로 마을이다. 이름도 생소하니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단어에 의미를 붙인다. 닭이 알을 낳아 클론이네라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붙이며 닥아라크로를 몇 번이고 입에 붙여본다. 그렇게 도착한 이곳은 고산지대에 목축업이나 농사를 짓는 작은 마을이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는 하루를 머물러 가야 한다.
비가 제법 내려 노란 우비를 입으니 이방인인 우리의 모습이 더 눈에 띈다. 거의 외부인이 없는 이곳에서 우리 세 사람은 시선을 받는다. 창가에서 우리를 보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인사를 하니 부끄러워하면서도 손을 흔든다. 길가 군데군데 물웅덩이에 모여 있는 오리 떼와 시골집의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우리는 걸어 들어간다. 마치 그림책 풍경 안으로 걸어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듯 오늘의 하루 일정을 모두 그분께 맡겨 본다.
오늘도 역시 '차이 올라르'를 말했다. 아주머니 한분이 문을 열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비가 와서 질퍽한 땅을 밟으며 걷는 우리에게 손짓을 하신다. 넓은 마당에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있는 작은 사과들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은 선선한 날씨에 난로에서 나오는 따뜻한 열기가 너무 반가웠다. 차와 손수 만드신 빵을 대접하시는 모습에 거듭 인사를 하며 한국에서 온 우리를 소개했다. 거실 소파에는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한 분이 누워계셨다. 많이 노세한 모습이 이제는 눈도 보이지 않으신다고 했다. 나이가 96세인 시아버지를 모시며 집안일을 하시는 이 아주머니는 이곳 평범한 아제르바이잔 여인의 모습인 듯했다.
이곳은 늘 음식에 빵이 나온다. 차를 마실 때도 식사를 할 때도 미리 만들어 둔 빵이 함께 한다. 식탁에는 달콤한 사탕과 비스킷이 담백한 차와 함께 하도록 놓여있다. 조지아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밀가루빵을 먹어보니 이 아주머니의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되었다. 더욱이 난로에 살짝 구운 빵을 수프와 곁들이니 계속 먹게 되었다. 음식과 난로뿐만 아니라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으로도 데워진 우리는 아주머니의 아들들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게 되었다. 폴란드에서 일하고 온 막내아들의 이야기와 결혼한 큰 아들의 양치기 삶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가 이 마을에 온 이야기는 마을에 퍼져 우리를 보러 온 이웃도 있었다. 이웃과 같은 가족과 이방인인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주는 이분들의 마음에 감사하며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곳 여성들은 결혼을 일찍 한다. 학교를 채 마치지 못해 글을 배우지 못하고 결혼한 이들도 많다. 자녀를 낳고 일을 하는 삶이 그냥 받아들여지는 삶이다. 주워진 삶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채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양 돌보는 일을 하다 보면 어느덧 노년의 삶이 되는 듯했다. 가족공동체와 마을 공동체로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자신의 삶보다는 우리라는 삶으로 살아가는 듯했다. 평범한 모습 속에서 모든 문화와 관습에 여자는 한 부분이 되어 그 모습대로 살아간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환대와 이곳 마을 사람들과의 만남에 내 기억 속에는 없었던 또 하나의 경험이 새겨진다. 시골에서의 풍경과 따뜻한 인심 그리고 삶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문화, 종교가 이들의 모습을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간직하게 한 것이다.
순수하지만 깊게 뿌리내려져 있는 관습 그리고 개인이 새로운 것을 감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조 속에 이곳의 모습이 먼 미지의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낸 하루가 지나 새벽이 되니 조금 분주한 듯싶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따라 나가보니 마당 가득 양들이 모여 있다. 어제 밟고 지나간 작은 사과들을 양들이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양들을 낮에는 외부에서 풀을 먹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말을 몰고 양을 돌보는 큰아들과 큰 트럭에 가득 차 있는 여물은 이곳의 삶의 모습을 짐작하게 했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곳에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각자 손에 쥐어진 핸드폰이다. 아주머니는 드라마를, 아들은 다양한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본다. 그렇게 전통적 삶을 고수하는 이곳에서도 외부의 물결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국을 알고 BTS을 알고 윤석열 전 대통령을 알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한국의 화장품이 좋은 지도 알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전혀 변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도 미세한 변화를 보인다. 시간 속 변화 외에도 환경에서 변화가 서서히 일어난다. 우리나라는 엄청 난 변화를 단 시간 안에 이뤄냈다. 그것에 가속이 되어 지금은 변화되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이들이 많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곳은 서서히 변화되는 곳이다. 똑같아 보이는 곳에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는 곳이다. 약소한 민족들이 서로 결속된 공동체에서 새로운 구성원들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를 맞이한다. 겉으로는 똑같은 삶의 모습이지만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있는 목동이다. 결혼한 부인과 자녀는 도시에 나가 교육을 받는다. 양을 치는 목동이지만 폴란드에서 일하고 돈을 벌어온 이다.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 이는 TV가 아닌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아이들은 K팝을 듣고 춤을 추기도 한다. 작은 변화의 흔들림이 미세한 바람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 함께 있으며 감지하는 이 경험이 얼마나 감사하고 귀한지 모르겠다. 그냥 책으로만 읽고 영상으로만 본 것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잠들어 계시던 할아버지가 우리들의 말소리에 깨신다. 며느리가 마련한 점심을 드시고 며느리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가시기도 한다. 차를 드시고 싶어 하시기에 뜨거운 차를 손수 입에 가져가신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손짓으로 탁자 위에 있는 각설탕을 입에 물려주시라고 한다. 그렇게 뜨겁고 씁쓸한 차를 이가 하나도 없으신 할아버지는 각설탕과 함께 넘기신다.
늘 차와 단것을 입에 달고 사는 이분들은 치아가 좋지 않다. 이가 빠질 정도로 관리가 안되니 혈당관리는 더 안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 분들에게 단것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보다 칫솔질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기도 하다. 문화를 바꾸는 것보다 수용하되 건강한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이곳에 온 것은 복음을 전파하려 함이나 그럼에도 그들의 문화를 먼저 보게 된다. 그들의 삶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하기 전에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낯선 이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달콤한 설탕 같은 것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지아는 낯선 곳이다. 터키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함께 하는 이곳은 한국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삶이나 그들의 삶은 묘하게 비슷한 것이 있다. 우리 할마니 할아버지 세대의 삶과 닮아 있다. 우리 조상의 여인의 삶을 이곳에도 보게 된다. 이웃이 가족이 되는 공동체를 보게 된다. 공간의 여행뿐 아니라 시간의 여행처럼 우리나라의 이전 세대의 삶을 보는 듯하다. 지금 우리의 시간 속에서 과거를 만난듯하다. 나의 짧은 인생의 시선으로 볼 때의 시간공간 여행은 그분의 시선에서는 하나로 여겨질 것이다. 그 하나의 선상에서 만난 우리가 나의 시선이 아닌 그분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야 함을 느끼게 된다. 나의 선입견이 아닌 그분의 사랑으로 바라봐야 함을 느끼게 된다.
조지아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고지대의 작은 마을, 그곳에서의 일박이일은 멋진 풍경만큼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느껴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