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사이의 방황

낯선 땅에서 마주한 나의 그림자

by 김혜신

Y의 질문은 늘 예상치 못하는 순간에 날아온다.

대답을 하고 나서야 '왜 이런 걸 물을까?' 싶었지만,

이상하게 그의 엉뚱한 질문은 대화를 이어가게 한다.

교회에서 그는 홍길동처럼 여기저기에서 활약한다.

성가대에서, 소모임에서, 교회전도에서 그리고 성탄절 연극모임에서까지.

그런 그의 에너지는 마치 풀 충전된 배터리 같다.


K는 늘 선두에 서 있는 모습이다.

큰 키와 독특한 헤어스타일, 그 자체로 그는 쉽게 눈에 띈다.

그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목소리는 늘 거침이 없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휘둘르는 마력이 있다.

그의 따뜻한 목소리는 엉뚱하게 보이는 Y를 잘 감싼다.

아마도 K도 Y 같은 엉뚱함이 있지 않는가를 생각해 본다.


나는 얌전하다.

마음에 있는 말을 다 하지 않는다.

생각으로 남는 말을 대체로 적는 편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때론 지쳐 혼자의 시간을 더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나 또한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다.

누군가 나의 본모습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면이 있다.

소속되고 인정받기를 원하면서도 혼자 자유롭게 주도하고 싶어 한다.


이런 세명의 조합이 2주간의 여정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처음에는 잘 알지 못했다.

다만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금세 해내는 3명의 조합이 신선했다.

생각이 교만으로 이어지지 않게 그 여정에 함께 하시는 그분의 인도를 위해 기도 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조지아로 향할 때 우린 그런 각자의 모습대로 발걸음을 향했다.


그렇게 각자의 리듬으로 출발한 우리는, 낯선 땅에서 한 리듬으로 걷기 시작했다.

성지순례로 합류하신 선교사님과 더불어 함께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남녀의 조합보다는 교회 안의 형제자매로 이어지니 때론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마음의 갈등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점점 줄어드는 말수 속에 병풍처럼 느껴지는 나의 모습에 좌괴감이 올라왔다.

왜 이정이 힘들게 여겨질까.

함께 있음에도 느껴지는 소외감은 그렇게 느끼는 나 자신에서부터 오는 걸까.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은 혼자만 살 수 없다.

수많은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자극에 반응하는 자신과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자신을 보며 살아가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 자신을 얌전하다고 했는데 그 말속에는 많은 숨겨진 이면이 있다.

어린 시절 포장된 이 얌전은 내가 선택한 기제일 뿐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님을 말이다.

나 또한 주도하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누군가의 주도아래서는 묘하게 나의 날개를 접고 있다가

혼자일 때 날갯짓을 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내가 먼저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손을 잡아 주는 모습 또한 보인다.

그와 함께 날갯짓을 하며 행복하게 날아가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다 따가운 햇살과 먹구름 속에서 퍼붓는 비에 지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어느덧 일방적인 나의 손잡음이 버거워지면

나는 손잡은 그를 무리 속에 넣어주고 혼자 날아가 버린다.

나의 관계는 내가 뭔가를 더 해야 한다에서 버거워진다로 그 패턴을 만든 듯했다.

그러니 때론 혼자만의 자유가 너무 홀가분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관계의 불편한 발란스를 보게 되었다.

2주간의 의미 있는 여정에도 우린 인간관계의 묘한 기류를 경험하게 되었다.

집을 떠나 24시간 함께하는 동안 느끼는 경험은 상대뿐 아니라 나 자신의 모습도 보게 했다.

두 남자의 캐미는 재미있었지만

그 안에서 묘하게 소외된 내가 스스로 더 힘들어했다.

관계의 주도권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할 수 없는 함께함이 피로로 변하자,

그제야 내가 얼마나 관계를 통제하려고 했는지 보였다.

Y의 끊임없는 질문이 피곤했고,

K의 자기 주도적인 강요가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결국 마주한 건,

그들을 향한 불편함뿐 아니라 내 안의 인정 욕구였다.


두 남자들 사이에서 작아지는 나 자신의 모습이 힘들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결국 스스로 터트렸다.

나의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다. 불편한 마음 그리고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두 분의 수용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이런 다름이 모두 같지 않는 우리 인간 사이에서

어떻게 성장해 나가는가와도 아주 깊은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선교라는 여정에 우리의 관계여정까지 깊숙이 관여하시는 그분의 인도하심이

지금에서야 더 깊은 울림이 된다.

다름을 인정하고 더 성숙해지길 훈련하심을 보게 된다.


관계의 시작을 늘 내가 더 먼저, 많이가 아니라

함께라는 관점으로 조율하는 시선을 마음에 선물 받았다.

머리의 인식이 2주간의 여정으로 훈련받고 경험케 되었다.

두 남자사이의 방황은 이제 경험이 되었다.

나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굽어진 모습을 토닥인다.

그래, 그렇구나, 그랬구나, 이렇게 해도 돼.라고 닫힌 문을 열어둔다.


언제부터인지 익숙한 곳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향할 때 불안감보다는 설렘이 더 커졌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호기심과 도전으로 받아들이니 그 과정이 흥미로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혼자 여행할 때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선택권과 조용히 사색하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때론 누군가 함께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서로를 더 알아가며 배워가기 때문이다.

이번 2주간의 선교여정은 그런 의미로 나 자신을 더 크게 돌아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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