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에서의 이방인의 삶

호두나무와 기다림의 신앙

by 김혜신

알지 못하는 글자가 가득한 간판들이 보인다.

제대로 포장이 안된 도로에서 나는 모래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어간다.

우리를 보고 쳐다보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그들 또한 그런 우리에게 손짓으로 답례한다.

연식에 상관없이 오래되고 다양한 차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주변에 커다란 개들이 보인다.

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누워서 자고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보다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개들이 대부분이다.


낯설다. 낯선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가 아닌 타지에서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호기심이 일어난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추측을 동원해서 낯섦을 다뤄본다.

그럼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왜 이 커다란 개들은 낮동안 거의 자고 있는 것일까

굶주리고 있다고 보기에는 살집이 있고, 버려졌다고 보기에는 길들려져 보이지 않았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길에서 사는 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보이는 개들이 궁금했다.

조지아의 마르네올리 주민의 대부분이 아제르바이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지아어를 모르고 조지아에서 사는 그들은 자신의 문자도 많이 모른다고 했다.

자신의 언어만으로 서로 의지하며 공동체 삶을 사는 그들, 아제르바이잔에 갈 수도 없고 조지아 문화에도 속할 수도 없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이어지는 새로운 세대들은 부모가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간다.


차도길을 지나 도시 중심가에 들어섰다.

제법 건물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다.

관공서도, 학교도 상점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본 적 있던 전기구이 통닭 기계도 보인다.

양고기를 손질해 매달아 놓은 고깃집도 보인다.

커다란 빵들이 보이는 빵집도 보인다.

그러다 벤치가 보인다.

한참을 걷다 힘들어 잠시 벤치에 앉았는데 한 소년이 눈에 띈다.

잘 생간 얼굴의 아이가 조용히 앉아 있다.

마주편 학교를 다니는 아이인 것 같다.


그 아이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이곳이 낯선 나에게 이 아이는 내가 무척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았다.

이름이 뭐진 몇 살인지 묻자 자연스럽게 잘 이야기해 준다.

혼자 앉아 있는 모습에 눈길이 간 것이 뭘까 하니 이 아이 또한 나 같은 이방인 듯싶었다.

한국에서 온 나, 조지아에서 살고 있는 아제리 아이,

조지아라는 곳에서의 자신이 느끼는 이방인의 느낌을 서로 느낀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될지에 고민이 많은 듯했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조심히 아이는 자리를 떠났다.


그 아이가 앉았던 자리를 다시 바라본다.

부모세대처럼 양을 몰면서 일할 아이 같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조지아 인들과 나란히 대학을 갈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폴란드에 가서 일하고 트럭을 몰고 돌아 올 아이 같지도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고 앞으로의 길을 막막해하는 것 같았다.


아제리 아이들이 하나둘씩 센터에 온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고 있는 알제리 아이들을 선교사님들은 집까지 가서 차에 태워 데려온다.

그 아이들이 익숙한 듯 마당에서 공 놀이를 하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수줍게 인사하는 아이들이 센터에서 예배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예배를 드리고 소모임도 갖는다.

찬양에 율동까지 하는 그들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설교시간에도 흩트러지지 않고 집중하며 말씀을 듣는다.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님이나 듣는 아이들이나 눈빛 하나 흩어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말씀과 함께 조용히 느껴본다.

여기까지 함께 온 그들의 모습 속에 함께 하시는 그분의 사랑이 느껴진다.

혼자 벤치에 앉아 고민하는 아이의 혼돈과 무기력하게 길가에 누워있었던 개들의 모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랑이 느껴진다.


이방인으로 여기 조지아에서 만났다.

모두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다.

이곳을 선택해 섬기는 이들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주신 마음에 순종했을 뿐이었다.

태어나 부모와 살아보니 고국이 아닌 곳에 살고 있는 아제리인이였다.

한국을 떠나 잠시 오게 된 조지아에서 나 또한 선택 아닌 선택의 이방인이였다.

사람이 아닌 개로 태어나 집 밖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개들 또한 그렇다.


이방인으로 이방인을 만나지만 그들의 얼굴에 빛이 보인다.

그들을 빛나게 해 줄 이가 누구인지 알려주려는 이와 그 사랑을 알게 된 이들의 빛이 모아진다.

함께 기도하며 빛의 힘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분이 부어주신 사랑으로 각기 다른 곳에서 서로 만나 하나의 빛으로 모아지는 순간, 서로가 빛나진다.

이방인이지만 결국 한 분의 자녀이다.

외지에서의 이방인의 삶이 빛나는 이유가 느껴졌다.


열매를 가장 늦게 맺는 나무 중 호두나무가 있다.

터키나 이곳 조지아에도 많은 호두나무는 8년에서 10년이 지나야 첫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래서 호두나무는 100년이나 200년까지도 살 수 있는 걸까

호두나무의 긴 생명력보다 우리는 더 짧은 인생을 산다.

호두나무의 첫 열매보다 더 훨씬 지나도 선교 열매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선교사님의 말씀에서 빛이 느껴진다.

열매 보다 자라나는 나무를 잘 보살피는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이 보인다.

그 사랑으로 서로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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