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성녀, 니노의 흔적을 따라

by 김혜신

요즘 같은 시대는 흔적을 따라 거슬러 가는 것보다는 빠른 결과를 원한다.

목이 마르면 곧바로 얼음이 든 시원한 물을 마신다.

배가 고프면 배달어플을 눌러 음식을 주문한다.

밤이 되어도 꺼지지 않는 불빛 속에 카페인 음료를 마시며 늦게까지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삶의 결과지를 받고 놀란다.

자연을 거스른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기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변명하며 불평을 토한다.


언제부턴가 '편안함에 맞춘 삶'을 잘 사는 기준이라 여긴다.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에 길들여져, 인내심보다는 즉각적인 보상을 택한다.

지나간 과거보다는 현재와 가까운 미래만 바라보며,

즐거움과 편안함, 풍요로움을 우선순위에 둔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세상은 그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과거의 이야기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

홀로 고립된 듯 잊혀간다.


어렸을 적 엄마가 가끔 들려주시던 이야기가 있다.

한국 전쟁 전, 평안도에서 사셨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늦둥이 막내딸이었다.

할아버지는 애교 많고 재주 많았던 엄마를 참 이뻐하셨다.

그 막내딸을 자주 엎고는 '요깡'을 주셨다곤 하셨다.

지금으로 말하면 팥양갱인데 그때는 아주 귀한 간식이었다.

지주 집 딸로 부족함 없이 살던 엄마는

전쟁으로 쫓기듯 고향을 떠나 부산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고생을 배우고, 꿈을 접고, 나의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셨다.

엄마의 이야기나 모습 속에서 난 참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엄마의 눈빛, 손길뿐 아니라 암마의 정서도 물려받았다.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녀는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부모님이 떠나시고 나서야

그 영향의 깊이를 돌아보게 된다.

함께 있었을 때는 '결과적인 행복'만 생각했다.

편안함, 풍요로움, 그리고 함께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부모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몰랐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돼 온다.

그제야 엄마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내가 던진 말, 했던 행동이 엄마에게 어떤 울림이 되었을지

이제야 가슴으로 느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울림은 더 깊어진다.

미안함과 그리움이 나이 든 내 마음속에서

조용히 더 자라난다.


조지아의 성지순례에서

우리는 성녀 니노의 흔적을 따라갔다.

1600년도 더 지난 과거,

니노가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한 흔적을 따라 이동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니노는

꿈에서 마리아의 부르심을 듣고 두려움보다 믿음을 따랐다.

카파도키아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던 그녀는

포도나무 가지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었다.

그 십자가를 들고 그녀는 조지아 므헤타츠로 향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기도를 하며 다가갔다.

그녀의 기적과 기도가 왕비를 고치고 결국 왕에게까지 감동을 주었다.

337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우리는 니노의 십자가 모양이 세워진 수도원과 교회를 방문했다.

그녀의 삶은 너무 먼 옛이야기 같았지만,

그 믿음의 씨앗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실이 놀라웠다.

많은 이들이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니노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회를 방문하며 흔적을 살펴본다.

그 씨앗이 지금은 믿음으로 많은 곳으로 전파되니

그 첫 씨앗을 진귀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나에게 더 깊이 다가온 것은

니노의 믿음과 복음의 전파보다는 엄마의 흔적이었다.

엄마의 삶이 나와 깊게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방황이 다시 믿음 가운데 세워진 것도

그 엄마의 기도 때문이었다.

니노의 헌신의 흔적을 따라 이동하면서도

결국 나는 나의 가장 가까운 믿음의 흔적으로 엄마에게로 돌아왔다.


내 삶의 근시적 시야를 먼저 느끼는 나의 연약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의 엄마나 니노나 그 누구에게도 똑같으신 그분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분께는 니노나 엄마나, 그리고 나,

모두가 하나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국경도 없다.


니노를 흔적을 따라 이동한 조지아의 성지순례는 겉모습의 교회를 보는 것만이 아니다.

과거 믿음 여정의 흔적 속에 자신의 믿음을 느끼는 여정이다.

나의 아직 부족한 믿음이 그분의 사랑으로 충분히 적셔지길 바라며

오늘도 삶에서의 작은 흔적도 놓치지 않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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