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 세반 호수의 송어를 찾아서

잡는이, 요리하는 이, 먹는 이

by 김혜신

S는 낚시를 참 좋아했다.

머리가 복잡하거나 버거운 하루가 지나면 늘 낚싯대를 들고 나섰다.

임진각이나 한강을 찾아갔다.

그는 그곳에서 낚싯대를 던져 입질을 기다렸다.

낚싯대에 걸리는 물고기을 원했을지도 모르겠다.

또는 출렁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정화시켰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S는 잡히는 물고기를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담아왔다.

집에서 먹기에는 벅찰 만큼의 물고기였고,

그는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베스 스테이크에서 매운탕으로 이어지는 메뉴의 반복이 조금씩 지겨워질 무렵,

그는 더 이상 물고기를 가져오지 않았다.

바다로 나가 보트를 띄우며 또 다른 낚시 사랑으로 이어갔다.


아르메니아의 명소 중의 하나, 세반호수

서울만한 면적을 지닌 이 호수는 최대 수심이 80m가 넘는다.

이 바다 같은 호수는 그들에게는 영적인 고향과도 같다.

그들의 영적인 회복장소이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자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르메니아에 오는 이들이 꼭 들리는 장소는 이 세반호수이다.

'영혼을 씻어주는 곳'이라는 이곳에서 그들은 바다를 느끼고 회복의 믿음을 확인한다.

그곳을 우리도 찾아갔다.

끝이 보이지 않은 파란 물과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을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듯하다.

해맑은 아이들이 이곳에 세워진 수도원에서 함께 사진을 찍자고 청하기도 한다.

한류의 인기가 실감되기도 했다.

자연의 깨끗함과 아이들의 맑음을 느끼며 세반 호수 주변을 걸어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연에 다양한 사람들이 거쳤을 모습을 떠올려 본다.

그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세반 호수의 송어를 점심으로 먹자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꼭 먹어야 하는 송어요리를 찾는 우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세반호수 송어찾기"라는 작고 엉뚱한 모험


K는 예전에 이곳에서 직접 송어를 사서

식당에 가져가 요리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커다란 송어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

요리사가 멋지게 송어구이를 만들어 주었다고 했다.

그의 경험담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져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는 송어를 요리하는 식당을 찾는 대신,

먼저 송어를 찾기 시작했다.

세반 호수에서의 송어 낚시는 불법이다.

멸종위기종인 송어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기에 송어요리의 송어는 모두 양식하는 종이다.

그러니 여기저기 양식하는 송어가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송어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길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구글의 정보도 검색하지만 송어만을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런 송어 찾기의 우리의 모습이 현지인들에게 인상적인지 우리에게 조언을 해준다.

송어를 가져가면 요리해 주는 식당을 먼저 알아보라고 했다.

결국 우리는 송어 찾기에는 실패했다.

K의 경험이 이번에는 해당되지 않음을 알고 순순히 송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실망은 요리 앞에서 싹 사그라졌다.

현지 맛집으로 인정할 만큼 저렴한 가격에 멋진 송어요리를 먹게 되었다.

전문 요리사의 능숙한 그릴실력과 송어구이의 양념이 너무 맛깔스러웠다.

고원지대의 공기처럼 단백하면서도 깊었다.

함께 주문한 야채구이와 버섯의 풍미도 일류 레스토랑을 무색하게 했다.

우리는 송어를 찾는 이에서 송어를 먹는 이로의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아마도 맛있게 송어를 요리하는 이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영적인 이 세반호수에서

그들은 잡지도 못하는 송어를 이야기한다.

양식 송어로 만든 이 요리가 일품인 이곳에

이것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을 찾아온다.

회복의 장소에서 먹는 영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조지아 아르메니아 여행은 선교를 향한 여정이었다.

말씀의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고 믿음의 선구자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때론 그 영적인 의미를 찾아가면서 가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S가 한강이나 임진각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불안감을 씻어냈듯,

우리 또한 영적인 흔적을 따라가며

우리 안의 믿음을 확인했다.


한국 영화 중 '놈놈놈'이라는 영화가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웨스턴 스타일의 영화였다.

화려한 캐스팅의 이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난 이 놈놈놈이라는 제목이 인상에 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바꾸어 봤다.

잡는 놈, 요리하는 놈, 먹는 놈.

물고기를 잡는 목적이

삶의 혼란을 단순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면,

물고기를 요리하는 과정은 그 혼란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었을 테고,

그 물고기를 먹는 경험은 자신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삶도 그렇다.

목적은 단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에 어떤 의미를 입히느냐에 따라

경험의 풍성함은 전혀 달라진다.

아르메니아의 송어에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선교여정에

우리만의 이야기를 얹으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바람이 있다.

목적만큼은 단순하길.

그리고 그 위에 선한 의미를 고요히 새겨

더 풍성한 삶의 이야기를 이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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