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가 닿은 아라랏산에서

“노아의 산을 찾아서 — 아르메니아의 상처와 희망을 보다”

by 김혜신

우리 집 강아지는 올해 12살이다.

작고 예민한 이 몰티즈는 늘 시선을 나에게 둔다.

소파 위에서도, 자신의 방석 위에서도,

늘 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몸을 둔다.

그 동그란 눈으로 주인의 동선을 읽고, 내가 어디 있는지 언제나 확인한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놓치고 싶지 않은 듯 말이다.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 도착했을 때,

내가 느낀 것 또한 그"시선"이었다.

도시는 마치 한 사람을 바라보듯 만들어져 있었다.

박물관, 공공기관, 공원, 상점이 빈틈없이 연결되고,

도시의 길들은 자연스럽게 한 방향을 향해 열려 있었다.

서울의 삼분의 일 크기, 백만의 인구가 모여 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축은

아라랏산이었다.

예레반의 어디서든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멀리서 아라랏산의 두 봉우리가 보인다.

특히 거대한 계단식 구조물인 카스케이드는

도시 전체가 산을 향해 고개를 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우리 강아지가

나를 더 잘 보기 위해 자리를 잡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라랏산은 이제 더 이상 아르메니아의 땅이 아니다.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아르메니아 왕국의 수도원과 교회, 마을들이

이 아라랏산기슭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들의 언어와 문화 믿음의 흔적이 그곳에 뿌리내려 있었다.

하지만 1915년

오스만 제국의 폭력과 공포 아래

100만 명이 넘는 아르메니아인이 학살당했다.

수많은 종교인, 지식인, 남성들 그리고 민간인들이

이유 없이 죽어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제로 길 위로 던져졌고,

그렇게 수백만의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가 만들어졌다.

역사는 그들의 고향을, 삶을, 그리고 아라랏산까지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그 아픈 흔적을 다 알지 못한 채

그저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따라

아라랏산과 가장 가까운 국경지대로 향했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터키 그리고 아르메니아의 접점.

수많은 민족의 염원이 뒤엉킨 곳이었다.

해발 5,000m간 넘는 거대한 산은

늘 구름에 얼굴을 숨기고,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며

정상을 보게 되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한 그날,

아라랏산은 마침

두 봉우리를 또렷하게 드러내주었다.

1760325568310.jpg

바로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바라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노아의 이야기를 떠올리기 위해 오고,

누군가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성스러운 산을 보기 위해 오고,

또 어떤 아르메니아인은

잃어버린 고향을 마음에 다시 새기기 위해 찾아온다.

그들에게 아라랏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뿌리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내린 심판이었고, 방주는 구원의 약속이었다.

150일 넘게 내린 비가 멈추고

물이 빠지자 방주는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그 이야기는 새 출발, 순종, 회복의 서사였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홍수 이후에도 여전히 불꽃같은 욕망과 폭력으로

서로를 상처 입히며 반복되었다.


아르메니아인의 비극 역시

그 반복되는 폭력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우리는 노아처럼

자신만의 작은 방주로 이 세상을 견디려고 하지만

때로는 그 방주조차 버거울 때가 많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순종할 때

어쩌면 또 한 번 아라랏산에 배가 머무르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르메니아인 들이 겪은 고통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선대가 남긴 상처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뿐일 것이다.

아라랏산의 평화를 기원하며,

노아가 방주 안에서

홍수 속 세상을 바라보던 그 시선을 떠올리며

나 역시 산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속에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희망이 함께 담겨 있는 듯했다.



20251009_101228.jpg












이전 11화아르메니아 세반 호수의 송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