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나로부터

다시 세워지는 마음의 자리

by 김혜신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인생전체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마치 그림의 바탕색을 결정하듯 말이다.

아이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엄마의 존재를 느낀다.

그 엄마로부터 받은 말과 행동, 그리고 아이의 판단이 합쳐져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인생의 각본'을 써 내려간다.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

이런 문장들이 아이 마음속 전제가 되고, 그 전제 위에서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펼쳐져 간다.


낯선 곳에 가게 되면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시선을 구성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비슷한 종교적, 인문학적, 그리고 정서적 렌즈를 가진 사람들끼리 비슷한 감상을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 각자만의 이해와 해석이 있다.

우리의 세계관은 독특하지만 동시에 한계가 있다.


조지아에서 아르메니아 국경을 넘어 예레반을 향해 가던 중 아파란의 성십자가 기념비와 마주했다.

수백, 수천 개의 작은 하차르카르(십자가조형)와 작은 금속 십자가들이 거대한 십자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33미터의 웅장한 십자가를 보며 떠오른 생각은 아르메니아인들의 깊은 신앙심이었다.

최초의 기독국가로써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들의 믿음의 십자가들이 이런 거대한 십자가를 만들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거대한 조형물 옆에는 아르메니아 고유의 문자를 기념하는 알파벳 기념비도 있으니 아르메니아인들의 자국에 대한 자부심 또한 많이 느껴졌다.

나라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믿음과 민족에 대한 그들만의 강렬한 자부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과 관련된 정확한 이야기는 이 여정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파란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투와 희생의 장소였다.

아파란은 '다시 일어난 자리'였다.


1918년 아파란 전투는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 제국군의 진격을 막아낸 결정적 전투지였다.

이 전투가 없었더라면 아르메니아인들은 전멸했을 거라고 한다.

개인의 희생이 민족을 구원한 곳이자, 폐허와 고통에서 다시 일어난 곳이었다.

그들 각자의 믿음이 민족을 지켜냈다는 민족주의적 염원이 담긴 곳이었다.

그들의 민족성과 신앙이 함께 결부된 그런 장소였다.

그 순간 문득 춘천이 떠올랐다.

6.25 전쟁 당시 소양호를 두고 북침의 속도를 늦추게 한 방어선.

그것을 알고 보면, 춘천의 풍경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버텨낸 자리'로 보이듯,

아파란도 단순한 거대 조형물이 아니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이전 것이 달리 보인다

역사는 사물을 보는 시야를 넓힌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 사이의 관계를 보며 삶의 관계방식을 배운다.

어떻게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지, 어떻게 다가가고 물러서야 하는지를,

직접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보고 느끼며 체득한다.

한때 나는 에릭 번의 '인생각본'이라는 이론에 분노했던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아이가 만든 인생각본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는 인생결정론으로 억울했다.

괜히 엄마가 미웠던 적도 있었다. 엄마에게 받지 못한 사랑의 결핍을 아파했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깨달았다.

그건 과정이었다.

깨닫지 못했을 때는 각본대로 살지만,

깨닫게 된다면 다시 자신의 인생 각본을 다시 쓸 수 있다.

마치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때는 결핍 속에서 몸부림치지만,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처럼.


새로운 곳으로 향할 때는 설렘이 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식,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긴다.

하지만 이 새로운 것들 또한 나의 시선에서 써 내려가게 된다.

어떤 마음으로 이 새로움을 만나 전개를 시킬지는 오로지 자신의 시선과 선택이다.

나의 결핍에 대한 시선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던 시기가 있었다.

사춘기를 뒤늦게 경험한 내가 다양한 세상적 경험을 하며 8차선 도로를 누비듯 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질주의 자신의 모습이 어린 시절 그분의 사랑을 알지 못한 자신이 각본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바라고 애써왔는지를 보게 된다.

그것을 알았음에도 인생에 완전한 변화는 단 번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인식한 만큼 조금씩 행동이 달라지고, 그 작은 변화를 감지하며 성장해 간다.


에릭번의 교류분석에서는 5대 인생 드라이버가 있다.

'완벽해라, 강해라, 열심히 해라, 서둘러라, 사람들을 기쁘게 해라'.

이 안에 갇힌 자신의 모습이 느껴진다면,

어린 시절 아이가 만들어낸 자신의 명제 속에서 지금 자신이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각본의 시야로 살아갈 때 인생은 허무의 시간을 느낀다.

한정적 시간 속에 갇힌 자신의 유한함의 연약함으로 무너진다.

그러기에 그 너머에 계신 그분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빛이신 그분의 사랑이 전해져야,

'~해라'라는 명령문이 아닌 '~이다'라는 존재의 의미로 전해진다.


아파란의 33m 성십자가는 단지 웅장한 조형물이 아니었다.

아르메니아인의 정체성과 믿음을 '존재의 언어'로 표현한 상징이었다.

33이라는 숫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나이임을 기억게 하듯,

그들의 믿음은 시간 속에 새겨진 존재의 고백이었다.


조지아 아르메니아 선교여정이 나에게 '관계여정'으로 이어진 것도,

결국은 나 자신의 인식과 선택을 다시 들여다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관계에 대한 나의 인식과 선택이 어떠했는지를 다시 살펴본 시간이었다.

어색하고 서툰 부분도 있었지만

함께 한 이들의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새로운 선택을 시도할 수 있었다.

내 마음의 수많은 결핍이 그분의 사랑으로 덮이고 다져질 때,

조금씩 성장해 가는 나를 느낀다.

마치 아이가 성장해 성숙한 어른이 되듯

아르메니아인들이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듯

6.25로 페허가 된 전쟁의 흔적이 다시 새롭게 복구되듯

나의 마음 또한 그렇게 다시 세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