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쌈과 짜조처럼
내 삶에 무엇이 곁들이면 행복할까
오늘의 점심 메뉴 중 하나는 무쌈이다.
다양한 채소들을 얇게 썰어 슬라이스 무와 함께 살짝 말아주면
하얀 무의 색깔과 알록달록한 색깔의 채소들이 어우러져 한 세트가 돼 버린다.
채소와 더불어 베이컨의 한몫이 단조로운 음을 다양한 톤으로 바꿔버린다.
그렇게 하나두 개씩 싸던 작업에 지원군들이 등장한다.
빠듯한 점심준비 시간에 손이 많이 가는 메뉴로 너도 나도 한 명씩 무쌈 싸는데 도움을 준다.
잠시 함께 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으로 명절의 분위기가 난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여러 명이 함께 했던 시기는 나에게는 명절이었다.
결혼 전에는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주도하에 부지런히 만두를 빚었던 기억이 선하다.
이후 결혼과 함께 명절 음식이 의무감이 되어 흥미를 잃어버렸는데 새삼 무쌈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게 된다. 요양원 어르신들이 매일 비슷한 메뉴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비슷한 일상에 무료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에 무쌈 만드는 일이 흥분이 된다.
‘이 예쁜 무쌈을 한 입에 드실 수 있을까, 곁들인 소스를 흘리지 않고 잘 드실 수 있을까, 아니면 발그스름한 파프리카의 신선함을 느끼실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바삐 손을 놀리게 되었다.
문득 먹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삐 움직이는 몸이 배꼽시계에 맞춰 밥 달라고 울부짖는 내 안의 소리를 일하면서 듣는다.
그러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면 왜 그렇게 맛있는지 식 판 가득히 채워지는 음식처럼 나의 몸의 두께도 두툼해지는 듯하다.
그런 나의 일상에 하나의 깍두기 양념처럼 톡 소는 듯한 무쌈과의 만남은 내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워 놓는다. 집에서라면 채소 써는 것이 귀찮다고 먹을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않을 음식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하게 된다. 그 음식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입맛에 잘 맞을지 걱정되는 내 생각과 달리 싹 비워져 나오는 식 판을 바라보게 되면 다시 입꼬리가 올라가게 된다.
길을 걷다 보니 여기저기 외부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먹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 야시장처럼 이곳 사람들도 점심시간에 이렇게 앉아서 먹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편안하게 즐기는 그들의 식문화의 정서를 느끼는 구경이 재미있었다. 보는 재미에 나도 배가 고파져 즐비하게 붙어 있는 가게들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베트남어로 쓰인 메뉴판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렇게 둘러보다 주문한 음식은 짜조였다. 쌀가루로 만든 라이스페이퍼에 여러 재료를 넣고 바싹 튀긴 것을 입 속에 넣으니 쌀국수와 조화를 이뤘다.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이는 것처럼 길게 면치기 하는 국수와 한입에 바싹 거리는 짜조는 매력이 있었다. 그 바삭거림이 또다시 다른 한입을 베어 먹으라고 보챈다. 그렇게 이국적인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접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친절한 안내가 아닌 무심코 만난 음식이 나의 호기심을 더 당기게 했다.
혼자 떠난 여행은 느낌이 색다른다. 자신이 가장 큰 친구가 되게 한다.
길에서 만난 이들과의 시간이 함께 동행한 이들로 스쳐가는 경치가 아니라 영화의 한 장면의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 음식이 주는 재미는 색다르다.
맛있는 맛집을 찾기보다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앉아 주문해 보고 그들이 시키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검색하니 ‘아 그것이 반미였네, 짜조였네’라는 역 발상이 생겼다.
정보를 잔뜩 수집해서 떠나기 전부터 머리가 아픈 여행보다는 비행기 티켓과 하루 숙소를 예약하는 여행을 선택했다. 택시를 타기보다는 현지인처럼 오토바이를 타며 바람을 가르는 재미를 느끼는 묘미도 있었고 근사한 레스토랑보다는 시장의 맛집을 어슬렁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음식이 짜조였다. 우리나라의 튀김 만두처럼 보이는 것에 다양한 소스를 곁들이면 내 입맛을 자극한다. 베트남의 다양한 소스처럼 그들의 다양한 라이스페이퍼를 구입하러 시장을 돌아다녔다. 다양한 크기와 질감의 라이스페이퍼를 사며 머리로 어떤 요리를 해보기를 이리저리 생각해 보았다. ‘돌돌 말아 기름에 튀겨볼까 기름에 지지듯이 구워 볼까 아니면 기름을 발라 에어 후라이기에 돌려볼까’라는 상상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만든 것은 무쌈의 야채와 베이컨처럼 라이스페이퍼로 채워 돌돌 말아보았다. 그리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천천히 구워 보았다. 베트남의 이국적 소스는 아니지만 간장:물: 설탕을 비율을 2:1:1로 맞춰 프라이팬이 둘러주니 지글거리는 소리가 난다. 쌈무의 담백하고 시원한 맛 대신 바삭거리고 묵직한 달콤 짭짤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비슷한 듯 다른 모양이 각기 자신만의 맛을 낸다. 무와 라이스페이퍼가 마치 엄마가 아이를 안는 것처럼 속 재료를 감싼다. 감싸 안은 그 재료가 면으로 만든 띠 같기도 하고 비단으로 만든 이불 같기도 하다. 그 안에 다양한 속재료로 내용물을 만들고 다른 조리법으로 그 맛을 다양하게 한다. 같은 듯 다르다.
사람들은 똑같은 삶의 가치로 살아가지 않는다.
어떤 내용물로 자신의 삶을 채울지 선택하는 것 또한 그 가치에 따라 결정이 된다.
그 가치를 잘 감싸 안을 옷을 찾아 입는 것이 자신의 일이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아 입어야 숨을 제대로 쉬는 듯한 삶을 산다.
쌈무를 기름에 튀기는 것이 어색하고 라이스페이퍼를 식초물에 재어두는 것이 상상이 안되듯이
우리는 자신에게 맞는 삶이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찾아본다
자신의 삶에 무엇이 겹들이면 행복한지 찾는 과정과 그 기쁨을 누리는 것이
삶의 상쾌함과 바삭거림으로 다가온다.
그 쌈무와 짜조처럼 같은 듯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삶은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