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날 때 유독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함께 있고 싶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마도 어딘가 통하는 곳이 있는 것 같다. 그 통한다는 것에는 마음일 수도 정신일 수도 있고 영혼일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이와는 이야기를 더 깊게 나누지 못하게 된다. 겉도는 이야기나 주변 이야기로 돌고 돌아 끝나 버릴 때가 있다. 아마도 감정이 깊은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참 그리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머님 할아버지의 정을 못 받아서 누군가의 할머니만 보면 마음이 갔다. 다행히 이모할머니가 근처에 사셔서 자주 왕래한 기억이 나에게는 좋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 중 하나는 아주 무더운 여름밤이었다. 지금처럼 더운 밤 선풍기 바람도 시원하지 않았는지 이모할머니는 주무시지 않고 부채로 바람 부시며 나를 토닥토닥하셨다. 잠 잘 자라고 조용히 나를 토닥거리시며 부채질하시는 모습은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해 주셨다. 따뜻한 할머니의 마음이 나에게 전해져 안정감이라는 테두리로 나를 코팅시켜 주신 듯했다. 이모할머니의 사랑이 내 마음과 만나 느꼈던 그 감정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나에게는 꼭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아는 그 언니는 지혜롭다.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고 동생들이 잘 되길 바라며 조언도 많이 해 준다. 다만 그 언니와 함께 있으면 좀 불편하다. 상대를 자신의 세상적 잣대로 비교하고 판단하는 말이 내 가슴에 박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수용된 느낌보다는 내가 입고 있는 옷과 내가 하는 일로 칭찬과 조언을 받는 듯싶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그 언니의 격려와 위로를 받지만 늘 조건이 붙는다. 함께 한 몇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모할머니의 사랑이 이 언니보다 더 따뜻하고 편하게 느껴진 것은 그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 때문인 것 같다. 그 언니에게서 나온 것은 마음보다는 정신과 머리에서 나온 사랑이었다. 이성적 생각과 판단이고 그로 인해 내 감성이 살짝 침해받고 상처받은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를 전인적으로 존중한다는 말은 상대를 가슴과 정신과 육체와 영혼을 가진 전인적 존재임을 알고 그렇게 전인으로서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의 마음이 어떤지 알아주고 그가 표현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으로 표현된 것은 그의 삶의 꿈과 희망, 삶의 목적이 출발한 영적인 차원의 욕구와 연결될 수 있게 한다.
그 연결은 그의 지성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정신을 자각시킨다.
그의 모든 것이 증상이나 상태로 드러나는 것은 신체이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몸은 건강하다.
인간은 참 신비로운 존재이다. 따로따로 별개로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이다. 마음은 영혼과 정신 그리고 신체로 다 연결된 존재이다. 마치 우리 몸의 혈액이 심장을 통해 나가 몸 전체에 영향을 주고 다시 들어오는 과정에 혈관과 온몸의 장기가 다 얽혀있는 것처럼 온전히 하나로만 존재해서 살 수 있을 수 없다.
나를 포함해서 누군가를 전인적으로 대한다는 것은 이처럼 모든 것이 함께 내재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러기에 그를 마음으로 영혼으로 정신으로 몸으로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서 기분이 좋다는 것은 서로가 존중했다는 느낌이 통해서 일 것이다. 그 느낌은 마음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관계의 시작은 마음이다. 그 첫 관문은 마음이다.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서로에게 신뢰와 안전감을 준다면 그 다음 관문들은 순차적으로 잘 열릴 것이다. 마치 내가 이모할머니의 마음이 그 언니의 이성적 생각보다 더 따뜻하게 기억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열린 마음이 나에게 이성적 사고를 받아들이게 하는 그 모든 과정은 그 누구를 전인적으로 대한다에 속해있다.
나 자신은 지금 어디쯤이 있는지 살펴보면 어떻까
자신을 너무 주관적인 선상에 두지 않고 객관화할 수 있는 건강함을 위해 상대와의 수평적 시선을 위해
오늘도 기대해 본다. 비록 실수가 있어도 늘 그 순간을 다시 인식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