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이라는 나의 가면을 벗기며

by 김혜신

"내 말은 그 상황에서 나 혼잣말로 한 거라고"

"난 **를 비난하려고 한 말이 아니고 ***가 그렇게 한 것이 속상해서 한 말이라고"


서로의 말투로 언짢은 대화가 이어지다 얼음처럼 굳어진 분위기가 돼 버렸습니다.

서로의 오해를 풀려는 말들은 자신의 입장을 얘기하더니 더 냉랭한 상태를 만듭니다. 여기에 분위기를 풀려는 주변 사람들의 말까지 더해져 긴장감이 팽팽하게 고조됩니다.

평소에 화기애애한 우리 모임의 분위기가 한순간 균열이 생기되니 쭉 긴 금으로 이어져 주변 이들의 마음도 금방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풀리지 않고 더 굳어지는 듯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날 저녁에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다 이 부분이 마음에 계속 남습니다.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입니다.


장벽은 단지 장벽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한 없이 왜소하게 만드는 굴레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식 속에 얼마나 많은 장벽을 쌓아 놓고 있는가를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신영복의 <더불어 숲>에서


관용은 자기와 다른 것, 자기에게는 없는 것에 대한 애정이다.

이 말이 저의 머리를 칩니다.

전 제가 관용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관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척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나와 다름에 그 다름을 자로 재고 있었고 판단했습니다. 나에게 없는 것이 있는 이에게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질투를 느꼈습니다. 관용이라는 모자를 쓰고 그런 척하며 나를 우위에 올려놓은 나의 비겁함과 이중성을 보았습니다. 상대와 나를 저울질하며 상대의 약점을 비겁하게 나열하는 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만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다툼이 이어질 때 서로의 마음이 어떨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중재할 것인지 나에게 중심을 두었습니다.

나의 이런 마음은 이 글의 표현이 너무 생소했나 봅니다.

'나와 다른 것, 나에게 없는 것에 대한 애정'

왜 살면서 그것을 애정이라고 못 느끼고 살았을까요.


애정이라면 다투지 않는 것이고 갈등이 없어야 한다는 나의 구조에서는 늘 애정이 있는 척이라도 했어야 함을 보게 됩니다. 반듯한 직선만이 존재해야 한다면 곡선은 직선이 되기 위해서 길이가 짧아져야 합니다. 조각조각이 나 버려야 곡선은 조금이라도 직선처럼 보입니다. 그처럼 저도 애정이 있기 위해서는 나의 갈등의 모양들이 조각이 나고 변형이 되어 그 구조를 직선으로 만들었나 봅니다. 그러니 조각 난 곡선들이 아우성 지르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저의 생각이었나 봅니다.


나의 장벽은 직선 앞에서 낮아지고 곡선 앞에서는 높아져 나와 다른 이들의 모습에 애정이 없었나 봅니다.

나를 누르려는 다름 앞에서는 나의 이기심이 마음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었고 내가 누를 수 있는 이들 앞에서는 베풂의 모습을 한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관용의 모습의 한 거풀을 벗기고 나니 나의 민얼굴로 민망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것은 그 관용의 마음을 배우고 싶어서입니다.

나의 조각난 곡선을 더 이상 자르지 않고 직선과 곡선이 아름다운 구조를 이루듯

다른 이들의 모습에서도

내가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나와 다르고 내게 없는 것을 애정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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