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에 대해 말해본다면

by 김혜신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는 질문에 순간적으로 나오는 정답은 "당연히 ~이죠"라는 말이었으나 그 당연히가 문제를 들어낸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말하는 것이 순식간에 나의 모습을 비추며 어긋난 모습들을 드러내 버린다.


코칭은 고객을 위함이요 코치의 높아짐이나 기술 연마가 아니다.

음식을 준비함은 먹는 이를 위함이지 자신의 잘함을 자랑하거나 능력을 과시함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그들의 성장을 위함이지 그들의 모자람을 비추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잘 살기 위함이지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성찰함으로 그렇게 살아내는 과정이니 글의 현란한 솜씨를 뽐내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붙여주었던 스티커 생각이 난다.

숙제를 잘해오거나 시험을 잘 보게 되면 하나씩 붙여 주었던 스티커가 일정량이 모이면 선물을 주곤 했었다.

그 스티커는 아이들의 학습 동기를 올려주고 칭찬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어느덧 이것이 당연한 것이 돼버렸다. 영어를 잘하려는 큰 그림은 희석되고 그 과정의 작은 목표가 수단이 되고 목적이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이들은 단어 시험 백점이 목적이 되고 어떤 선물을 받는지가 관심이 되어 배움 그 자체의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 아이들처럼 어느 순간 나에게도 그런 모습이 보임에 스스로 자문하게 된다.

"잠깐! 너 지금 어디 있니, 무엇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어 봄으로 내 안에서 작동하는 에고 시스템의 발전기를 잠시 멈춘다.

내 시야와 판단으로 상대를 바라봄으로 너무나 많은 벽과 한계를 세우고 있음을 본다.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함으로 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다시 목적성을 물어본다.

나도 모르게 채우고 싶은 보따리를 내 식대로 채우느라 가고자 하는 길을 저만큼 벗어나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제3의 눈을 앞에 두고 사랑의 마음을 다시 장착해야 함을 안다. 알기게 매일 그렇게 살도록 늘 살펴야 함을 본다. 내 안의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고 나의 에고가 나를 삼키지 않게 하기 위해 늘 주시해야 한다.


어제 저녁부터 이어져 온 의식의 흐름이 나의 모습을 한 줄로 정렬시킨다.

코칭 핵심 역량 <프레즌스를 유지한다>에서 Wonder의 < August>와 신영복의 <더불어 숲>은 내 안의 호기심에게 "주의"라는 카드를 올려준다.


지금 이 순간 그 자체를 순수히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삶의 기준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삶의 기쁨이 된다.


건물주 백수가 꿈이라는 아이들의 이상은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 너머를 볼 수 있게 되고

단어 백점이 아니라도 한 단어를 이해함으로 얻게 되는 기쁨이 더 큰 배움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고

전문코치라는 알량한 겉모습보다 누군가와 함께 함으로 느끼게 되는 공감과 변화의 기쁨을 느끼고

조리라는 나의 일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음식이라는 자부심으로 나에게 다시 돌아옴을 잊고 싶지 않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고전 영화를 다시 보며 작가 헤밍웨이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생각해 본다.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미국인이 마리아라는 전쟁의 희생자를 사랑하며 마지막 총구를 자신의 목숨과 함께 희생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 ~이다라고 말하지만 그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인 된 삶이 되어버린다면

누구를 위한 종을 울리는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어떤 답을 또 내놓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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