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작은 실천이 더 귀한 이유
얼마 전 산책 중에 비탈길에 떨어진 스티로폼을 정리하시는 분을 보았다. 여기저기 흩날려진 쓰레기를 치우시는 공공근로 어르신을 볼 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치우시는 분들을 가끔 보기도 한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주변을 깨끗하게 하시는 이들의 마음이 더 끌리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하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스스로 조용히 마치 마땅히 해야 할 일처럼 하는 모습이 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사회이다. 자신과 관련된 일 외에는 관심을 두는 것조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당장 내 눈앞의 일이 더 중요하고 나 자신의 희로애락이 더 크게 느껴진다. 다른 이에게 일어나는 것은 평범한 것이요 나에게 일어나는 것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눈에 보이는 것을 많이 따라가고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공통점이 아닐까 싶다.
남의 단점과 다른 점을 험담하고 비난하는 것에 유독 관대해지는 사회,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상대적 열등감이 커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 자신은 진정으로 자기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의 책임과 의무로 돌리고 자신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로 숨어버리는 똑똑한 척하는 겁쟁이가 아닌지 묻고 싶다. 많이 알고 있고 그러기에 설명하려고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의 인정욕구와 호기심이 타인을 수평적으로 보지 않고 무시하거나 메시아적 선지자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아니면 방관자의 입장으로 회피하려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나 또한 이 질문에 대해 나 자신을 볼 때 자유하지 않음을 안다. 용기 있다고 하지만 회피와 자기 타협으로 모호하게 정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난의 시선으로만 보지 않기를 바란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이 사회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물질만능주의 사회라고 불평등함에만 시선을 두지 않기를 바란다. 묵묵히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히 자신이 있는 곳에서 남을 도와주고 있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입에서 쉽게 나오는 말에는 그 사람의 세계관이 보인다. 말 한마디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것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쉬운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비수가 된다는 것은 나의 세계관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로의 세계관이 상처가 안되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나오지 않고 홀로 살아가려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세계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조차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밀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말과 연결된 세계관에서 우리는 끊임없는 관계의 줄다리기를 하며 산다. 그 줄다리기로 누군가는 승자이다 패자이다라고 규정짓는 사회이기에 유독 승자에 대한 인정과 패자에 대한 비난이 속출하기 쉽다.
하지만 한판의 줄다리기로 끝나는 게 인생이고 사회는 아니다. 그 흐름이 늘 바꿔지기에 한때의 승자는 패자가 되고 한때의 인정은 비난이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줄다리기에 선 선두자의 모습이지만 그중 어디에 자신 또한 그 줄을 당기도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군가가 깨끗하게 해 주는 거리를 걷게 되면 기분이 좋다. 눈이 쌓인 거리를 제설하는 차나 공원에 장식된 화려한 장식들로 더불어 누리는 즐거움에 감사가 나온다. 주말 거리의 버스킹으로 귀가 호강해지고 집 없는 개냥이들을 걱정해 제공한 사료나 보금자리를 보면 뭉클해진다. 도시락 봉사의 손길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사회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음에 따뜻해진다. 사회에 대한 시선이 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고 두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까지 보게 되기를 바란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에 따라 보고 듣는 것이 정해진다면 지금 내가 보고 듣는 것이 내 마음이 아닌가 싶다.
스스로 조용히 마땅히 해야 할 일처럼 하는 그 누군가의 손길이 귀함은 나 자신이 아직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마음으로만이 아닌 실천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작은 것 하나라도 그렇게 실천하는 오늘이 되기를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