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를 전하는 사람이시나요
얼마 전 조리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 6시도 채 안 됐지만 어둑한 하늘과 매서운 바람이 부는 날씨에 애달픈 소리가 귀에 자꾸 박혔다. 문을 열고 나가니 비닐하우스 구석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주변에 고양이 밥을 챙겨주시는 분이 있지만 물을 먹고 싶어 할까 싶었다. 빈 그릇에 물을 떠서 가져가니 고양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며칠 후 같은 장소에 가보니 물이 얼어 있었다. 추운 날씨에 먹을 것도 변변치 않는데 물까지 챙겨서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심란했다.
예전에 겨울이면 아버지가 잘 사 오시던 간식거리가 있었다. 붕어빵, 군밤, 땅콩엿, 그리고 귤을 담은 검은 봉지를 들고 오시는 아버지가 기억난다. 늘 먹을 것을 사 오시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그렇게 도란도란 나눠 먹는 그 행복이 크신 것 같았다. 딱딱하게 언 엿을 장도리(망치)로 조각을 낸 기억도 나고, 팥 앙금이 제법 많이 들어간 식은 붕어빵을 먹으면서 좋아했던 모습도 떠오른다. 손이 까맣게 묻어나는 군밤을 까먹으면서 서로의 입에 넣어 준 기억도 난다. 추운 겨울 지금처럼 난방이 잘 되던 시절도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그 기억으로 그냥 따뜻하게만 느껴지는 추억이다.
12월에 많이 들리던 캐럴소리보다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붐비는 번화가의 사람들을 본다. 아이들과 손잡고 다니는 부모의 모습보다 강아지 산책을 나온 이들의 모습이 더 눈에 많이 띈다. 길거리 붕어빵 포장마차보다 다양한 먹거리로 가득 채워진 상가 건물들이 쭉 보인다. 어느 구석도 배고파 보이고 추워 보이는 이들은 없다. 추위와 상관없이 먹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즐비한 곳을 찾아가는 이들의 모습만 보인다.
보이는 모습에서는 큰 차이를 모르겠다. 예전에 비해 먹고사는 곳이 훨씬 좋아져서 누군가가 배고픔과 추위로 힘들어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복지정책이 잘 돼서 예전에 도시락을 못 먹어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시절의 이야기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버튼 몇 번이면 배달되는 음식으로 인해 추운 날씨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도 편하게 먹고 쉴 수 있다.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겨울의 따뜻한 먹거리의 모습으로 추억이 새겨지는 시대가 아니다. 가족끼리 도란도란하던 모습보다는 개인적인 만남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 더 잦아진다. 간식거리를 들고 오는 아버지의 손을 붙잡기보다는 배달 아저씨의 음식을 받는 손이 더 잦아진다. 가까운 가족의 거리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 쉬운 사회가 된다. 서로의 체온보다 스마트폰과 그 미디어의 영향에 정서가 더 가까워진다.
그럼에도 그 어떤 때보다 동물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애완동물이 가족이 되고 아끼지 않고 돈을 들이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주고받기 때문일까.
그렇게 사랑받는 애완동물의 모습에 추위에 떠는 길 고양이가 눈에 들어온다. 철장 안에 갇힌 채 밥만 먹고 지내는 개가 안쓰럽게 느껴진다.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동물들을 구조하는 영상을 볼 때도 마음이 저리다. 한쪽의 행복에 보이는 모습에 그렇지 않게 보이는 동물들이 눈에 띄는 이유는 무엇일까
겨울로 떠올려지는 추억이 각기 다른 세대가 함께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자기만의 행복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허기질 수 도 있다. 추운 겨울 보금자리도 음식도 궁핍한 길고양이가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하듯 우리도 정서적 결핍으로 사랑이 고플지도 모른다.
따뜻한 음식과 집이 추운 겨울 더 절실해지는 것은 그 온기이다. 그 온기로 누군가는 생존도 편안함도 누릴 수 있다. 그러기에 그 온기로 마음도 영혼도 따뜻했으면 한다. 사람으로부터도 받을 수 있는 그 온기를
주변에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는지 둘러본다면 어떨까 싶다.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것이 된다면 다시 생각해 본다. 지난 시절의 평범함이 지금에서야 특별함이 된다면 잠시 멈춰보자. 지금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