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상태를 부정하는 말도 있다.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다.
얼마 전 읽게 된 소설 파친코에서 선자라는 여인을 만났다. 말수가 많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선자는 속이 깊은 아이였다. 선자는 남편을 일찍 여읜 엄마의 하숙집 일을 도우며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다. 한눈팔지 않는 그녀의 곧은 성격은 남자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불량배에게 봉변을 당할 뻔한 그녀를 도와준 한수에게는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친구 같기도 아버지 같기도 한 그와의 짧은 만남이 그녀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으리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훗날 세상을 뜨기 전 선자의 엄마는 선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16살 선자가 한수라는 유부남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아이를 갖지 않았더라면, 오사카로 가지 않았더라면, 선자의 남편 이삭이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들 노아가 자신의 아버지가 한수라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한평생 여자의 삶보다는 엄마의 삶과 일본땅에서 무시당하는 조선인으로 살았다. 여인의 삶은 고통이라는 선자 엄마의 한스러운 말처럼 먹고 두 다리 펴고 누을 곳을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하며 살아왔다. 한 순간의 실수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삶의 무게가 선자를 덮쳐 왔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헤쳐 나왔다. 여인의 삶을 놓친 것의 원망보다는 키워야 할 아들 노아에 대한 마음으로 억척스럽게 살았다. 한수를 사랑했지만 자신과 한수의 아들을 보호하는 남편 이삭의 헌신에 감사한 선자였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시대까지의 일본의 한국인들의 삶을 그려낸 이 이야기가 묵직이 내 마음에 내려앉는다. 안다고 한 역사적 이야기 속에는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이들의 세월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누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감히 상상조차 힘든 특권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당연한 권리를 뒤로 하고 다른 가치를 원하는 불행한 이들이 많은 이 시대를 돌아보게 된다. 게다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는 양파껍질과는 달리 삶의 인과관계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될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하나의 선택으로 퍼질 파장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시대와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행복보다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살아왔던 세대, 자신의 행복이 쾌락으로 흐르게 되는 세대, 그리고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 같은 시대가 안고 있는 불평등에 힘들어하는 세대가 불과 100년도 안된 시간 속에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더 좁아져 지금의 삶에서 이 모든 세대의 무거운 숨소리를 듣게 된다. 그 옛날 선자의 삶을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다른 여인들이 감당할지도 모른다. 선자와는 다른 삶의 모습을 가져도 그녀만큼 행복하지 않은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말려가는 삶은 아닌지 물어본다. 정신없이 열심히 달려온 인생에 정작 자신은 없고 주변이 들 만을 위한 삶으로 힘들어하지는 않는가. 내가 주인이다는 마음이 자신의 삶에 무모함을 실어주는 것은 아닌가 물어본다.
만약이라는 가정이 때때로 필요하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 온 과거에서는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이미 새겨진 그림이다. 그 그림을 보고 점검하고 살펴볼 수는 있지만 수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가능성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만약 내가 지금에 더 충실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삶의 목적을 말하고 그대로 산다면 어떨까라고
선자가 70이 넘어 자살한 아들 노아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그곳 관리인을 통해 아들 노아의 마음을 깨닫는다. 노아는 자신의 삶의 뿌리를 길러준 아버지 이삭에 두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은 파친코의 일을 하는 노아는 자신의 뿌리를 용납 못하고 자살했다. 삶의 배움을 이어가라는 노아의 따뜻한 말에 책을 읽기 시작한 관리인의 이야기에 선자 자신도 자신의 삶의 뿌리를 돌아보게 된다. 선자의 삶의 파노라마에서 연결된 수많은 이들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소설이다.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시간이 세월이 되는 동안 변해가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의 삶도 다시 돌아본 시간이었다.
자신의 뿌리를 살펴본다는 것, 그로 인해 지금의 삶에서 내가 누리는 행복의 소중함과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보게 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