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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신 Dec 24. 2024

요양원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춤을 출 수 있게 된 것은

 어린 시절 산타할아버지의 실체를 알고도 크리스마스이브 때는 기대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어떤 선물이 머리맡에 놓여 있을지 말이다. 원하는 소꿉놀이 세트가 놓여 있었을 때와는 달리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괜히 심통이 나서 말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아침을 먹은 기억이 떠오른다. 


 결혼 후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닐 때 크리스마스 때가 다가오면 아이들이 좋아할 선물을 예쁘게 포장해서 몰래 보내달라는 메모를 받았다.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꾸러미에서 엄마의 선물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이벤트가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이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 책을 보낸 나에게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아들은 나의 예전 선물을 못 받고 굳어진 표정과 흡사한 모습을 되돌려 주었다. 

그럼에도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따뜻하고 풍성한 시간을 보내는 선물을 주었다. 아이들의 존재로 동심으로 다시 돌아가는 그 시간의 기억 속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선물로 들떠 있는 나의 모습도 나의 아이들의 모습도 녹아 있었다.  

 이제는 다 성장한 자녀들이 독립적으로 보내는 시간 안에서 나 자신도 풍성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선택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요양원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디스코 타임이 있다는 요양 보호사의 농담에 깜박 속아 넘어가 웃다가 점심식사 후 진행되는 행사에 가 보기로 했다. 조리사로서의 나의 작업공간이 조리실로 한정되어 있지만 난 가끔 어르신들을 만나기도 하기에 그분들이 어떻게 크리스마스를 보낼까 궁금하기도 했다.

꾸미기와 음식준비등 행사진행이 세팅될 무렵 어르신들이 휠체어에 앉아 1층 홀에 한분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캐럴송과 공연팀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시는 분들도 계셨고 무표정의 모습 뒤로 별 반응이 보이지 않는 분들도 계셨다.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성탄 찬양과 공연팀의 활기찬 율동이 나의 어깨를 들썩 거리게 했다. 탬버린을 흔드시는 어르신의 센스 있는 모션과 굳은 손으로 탬버린을 두드리기만 한 어르신의 모습에서 이 자리의 흥을 즐기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옆에 앉아 눈을 감고 계신 어르신의 떨림을 느꼈다. 노래의 음을 허밍으로 따라 하시고 계셨다. 굳어진 몸과 얼굴 표정과는 달리 반응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공연팀의 사랑스러운 율동을 따라 할 수는 없지만 전해지는 사랑을 받고 계셨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대할 나이도 아니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처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함께 하는 이 시간들을 느끼고 즐기고 계셨다.

'진짜, 정말'이라는 한정된 단어만 표현하시는 어르신에게 다가갔다. '좋으세요?'라는 나의 질문에 '진짜요'라고 답하신다. '진짜 좋으세요?'라는 나의 질문에 '네'라고 하신다. 이전처럼 통기타에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기타를 연주하는 공연자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서 이전 과거를 떠올리실까 생각되었다.


 모두 자신의 삶의 역사를 가지고 이곳에 계신다. 이전에 건강하고 기세 높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연약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모습으로 이곳에 계신다. 현재의 그 모습 뒤에는 이전의 기억들이 조각처럼 붙어있다. 지금의 모습이 빛바랜 사진처럼 퇴색되어 가고 있지만 가끔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의 단편 조각들을 떠올리고 계실 것이다. 

'노란 셔츠'의 가요가 나오자 여기저기 따라 부르시는 분들이 보인다. 아마도 젊은 시절 좋아했던 애창곡이었나 보다. 함께 손뼉 치고 웃으며 따라 불렀다.




 선물로 기대한 나의 모습도 아니고 아이들과의 따뜻한 시간으로 채워진 크리스마스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과 현재의 만남으로 함께 한 어르신들과의 크리스마스로 그 어떤 때보다 들썩거렸다. 크리스마스 때 춤을 쳐 본 적이 없던 내가 함께 따라한 율동으로 더 신이 났다.

이전의 모습을 생생히 떠올 리 수 있는 내가 지금의 나의 모습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때론 잃어버리는 기억이 잔인한 현실의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을 맞이할 용기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된다. 세월의 흐름을 미리 가서 보게 됨에도 감사하게 된다. 우리 모두 치매의 위협에 자유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알게 된다. 미래의 알 수 없는 모습보다는 현재 지금의 내가 선택할 기회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100세가 120세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건강한 모습으로만 사는 나이가 아니라면 연약하고 아이 같은 어르신들의 모습도 나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할 순간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때 떠올릴 지금의 모습이 기억의 조각으로 나에게 붙어있게 된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크리스마스 때 처음으로 춤춰 본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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