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력으로 미래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결심
“입고 있는 옷이 잘 어울려요. 굉장히 여성스럽게 보여요.”라고 건너는 말에
“아니에요. 엄마가 입던 옷인데요, 뭘요.”라고 대답했다.
“칭찬에 그렇게 반응하군요”라고 날카로운 지적을 한 상대의 말을 흘려보냈지만 한동안 그녀의 말이 비숫한 상황에서 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상대의 칭찬과 인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체로 “뭘요, 대단한 일도 아닌데요. 아닙니다.”라고 말할 때 나 자신에 대한 디스카운트가 있었다. “고맙습니다.”라든지 “그래요,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면 무척 쑥스러웠다.
자신에 대한 인정과 칭찬이 좋았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또는 그것을 나 자신이 정말로 인정하는지에 대한 여러 측면이 위의 대화에서 생각하게 된다. 왜 그렇게 반응할까라는 나의 질문에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리고 떠오르는 한 장면이 그려진다.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난 정말 공부를 못했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렇게 멍한 상태로 보내다 5학년때는 정신이 좀 든 것 같았다. 배우는 내용이 이해가 되고 관심이 생기니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성적을 받게 되었다. 나도 선생님도 놀라 받아 본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갔다. 엄마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의 성적표를 내밀었다. 그 성적을 바라본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그냥 누워서 주무셨다. 그때의 반응이 당시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나는 그냥 성적표를 가방에 넣고 조용히 보낸 것 같았다. 가족 누구에게도 자랑을 하거나 칭찬을 받지 않았다.
이후 상담을 통해 다시 들여다본 나의 가족사와 나의 모습에서 억눌린 나와 우울하신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시간들을 떠올려 보고 이해하고 수용하는 긴 과정을 거쳤다. 나의 어린 자아를 만나 토닥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 나의 내적 치유를 잘했다고 생각한 내가 ‘그릿’이라는 책을 통해 읽다가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대개 사람들의 내면에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닌 낙관론자 바로 옆에 고정형 사고방식을 지닌 비관론자가 나란히 존재한다. 몸짓 언어와 표정, 행동이 아니라 말만 바꾸는 실수를 하기 쉽기 때문에 이런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조심하라라는 것이다.
내 안에 숨어있는 감정이 내 생각과 신념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때론 그 감정이 없다고 생각하다 나도 모르게 하는 말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내 안의 숨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내가 가끔 하는 말속에 숨어있는 의도를 보고 놀란다. 숨김 이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것을 나의 생각이라 표현하지만 때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숨김 이를 더 이상 숨기지 않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규정한 범위가 넓어지니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그러니 세상을 영구적이고 전반적인 이유로 해석하지 않게 된다. 그 당시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일시적 구체적 원인을 이야기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칠해진 내 기억의 바탕색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색으로 칠해지고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색깔이 다른 색과 섞이기에는 너무 강해가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의 인생에 대한 영구적 스케치와 색칠이 이미 내가 수정할 수 없는 상태이고 그 위에 나는 작은 덧칠을 입히고 있었다. 희망을 포장한 나의 절망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수면 깊숙이 펼쳐져 있는 나의 무의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왜 내가 칭찬에 대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그때 반응하는 것이 어색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왜 내가 때로는 불안감에 들고 허둥지둥할까 라는 생각도 이해가 되었다.
힘든 일을 이겨내는 힘은 중요하다. 그 시기를 끈기와 낙관적인 대화로 성장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다만 나에게는 힘든 일이 유독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 나에게는 힘들고 절망적인 일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는 영속적인 마음은 그런 상황을 계속 자신에게 심어주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심고 있었던 절망의 씨앗이 희망의 씨앗과 함께 자라 희망의 뿌리는 먹고 있음이 깨달아졌다.
스스로 삶의 선언문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선포하는 것은 그 깨달음을 삶으로 가져오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다이어리 앞 페이지에 자리한 자기 선언문을 다시 적어보게 된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다른 이들도 존중하며 사랑한다.
나는 더 선하고 좋은 선택을 하며 산다.
나는 함께 성장하고 번영한다.
한 문장씩 써 내려가는 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지지를 느끼게 된다. 나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지니 사랑하는 마음이 더해진다.
끈기 있는 열정의 마지막 단계인 희망에 대해 노력으로 새롭게 결심하는 나 자신을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