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편안함을 누리는 시간
평소보다 조금 늦게 눈이 떠졌다. 그래도 5시다. 벌떡 일어나는 것은 한 주간 고생한 나의 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돼서 30분 이상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주에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시작되는 조리업무를 3일이나 하니 잠이 깬 나의 몸은 온갖 신음소리를 낸다. 관절 사이의 통증과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매쾌한 냄새 그리고 순식간에 몰려오는 건강에 대한 염려가 잠시 누워있는 동안 나를 에어 싸버린다.
일어나 필사와 독서를 하면서 일상의 잔잔한 평화감을 느낀다. 깊게 몰입하는 시간보다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처럼 종이 위를 흐르는 나의 눈과 손에서 글을 흘려보낸다. 그렇게 흘러간 글이 내 마음에 새겨지면 잠시 책에서 눈을 뜬다.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토요일의 휴식시간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머무른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가서 야채 손질을 하며 요즘 빠져있는 야채과일식 전처리를 하고 밥솥에 고구마와 감자를 삶았다. 그 냄새에 자고 있던 강아지가 내 곁에 온다. 이미 고구마의 맛을 알아버린 아지는 눈빛으로 애절하게 마음을 전한다. 고구마가 먹고 싶다고. 강아지의 눈빛을 무시하고 어제 미룬 분리수거와 사워를 하고 나서 아침 요가 수강을 눌렀다. 토요일 9시면 가던 요가를 시작으로 오늘 하루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이건 아니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늘 저녁이면 여행 유투버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는 내가 그냥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 싫은 것이었다. 하루의 여유 있는 선택을 생각하다 경의선 노선을 훑어보았다. 팔당역이 눈이 들어온다. 산과 물이 있는 곳, 가볼까라는 마음과 함께 배낭을 챙겼다. 최소한의 짐으로 책 2권과 다이어리를 넣고 집을 나섰다.
핸드폰 배터리는 32라는 숫자를 표시한다. 미처 충전하지 못했지만 지체할 수 있어 발길을 경의선 기차에 올려 놓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보다 책을 폈다. 앳된 군인들 틈에 자리 잡고 앉아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첫 페이지를 펴 본다. 이미 읽어 본 책이지만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여행과 함께 떠나는 책에는 여행의 진한 냄새가 책의 내용과 이어진다. 책상 앞에서 읽는 내용에 갖가지 자연의 향료가 붙는다. 그렇게 책을 읽다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따뜻한 실내에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것이 지하철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차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보다 구석구석을 볼 수 있고 나의 시선을 좌우 위아래로 다 향할 수 있어서 참 좋다.
한참을 지하철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책의 한 부분이 내 시선을 붙잡는다.
"관심"이라는 단어.
나를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 중
상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라는 부분이었다.
궁금해한다는 것, 관심을 표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내려져 있는 장벽의 첫 단계를 해제하게 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길 원하지만 말고 내가 먼저 상대를 좋아하는 것처럼,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는 것은 하나의 용기이다. 게다가 상대에 대한 궁금증은 그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단순히 나의 호기심 너머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나의 열린 마음과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주고받는 이야기로 서로의 세계를 이해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 자기의 이야기만 하고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무례한 것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상대도 그래야 한다는 마음 또한 상대에게 생채기를 내기 쉽다.
그렇게 비난과 불평을 표하는 대신 감사와 격려를 아끼지 말라는 말과 함께 관심이라는 말을 안고 팔당역에 하차했다.
하나의 출구에는 등산하려는 무리와 주변을 찾은 이들로 토요일 오전을 채우고 있었다. 차분히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찻길 옆을 걸으면서 눈앞의 햇살을 받으니 새롭다. 햇빛에 반사되는 팔담댐의 물의 눈부심을 바라보다 사진을 찍었다. 주변 풍경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넓게 펼쳐진 풍경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바쁘게 몰아친 일주일간의 긴장감이 풀어진다.
그렇게 걷다 눈에 팔당 메밀국수라는 단어가 띄었다. 화려하지 않지만 구수한 냄새가 나는 메밀국수가 팔당역과 닮아 있을 것 같았다. 이른 점심을 먹으러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주먹의 메밀국수와 들깨, 곁들여진 시래기와 얇은 오이 그리고 아보카도와 단감의 식감이 잘 어울렸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주변을 채우는 든든한 친구처럼 내 입안에서 채워지는 메밀국수의 맛은 나의 위를 편안하게 채워주었다. 조금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지고 강렬한 양념이 아니지만 그 편안한 맛에 더욱 편해졌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길을 혼자 걷는다. 혼자지만 혼자 같지 않다. 친구와 걸으면서 이야기하다 놓칠 수 있는 햇빛과 물살에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따뜻한 햇살로 일광욕을 하듯 데어진 나의 몸은 햇살을 계속 받으며 걷는다. 오른쪽 팔당댐 물살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운 하루의 편안함을 느끼면서 말이다. 여행의 목적지만을 향하는 여행이 아닌 걷는 대로 느껴지는 여행이라 좋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좋다. 계획하고 예약하는 여행보다 그냥 떠나는 여행이라 좋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아도 되니 그 자체로 나를 편안하게 한다. 참 많이 애쓰고 산 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편안하게 오늘 하루 나를 그냥 햇살에 놓아두는 시간이 있어 참 좋다.
그냥 떠나는 여행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