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도 특별한 사진 모음집 2
드디어 겨울이 왔구나, 싶을 정도로 날씨가 추워졌다. 추워진 날씨만큼 해도 많이 짧아졌다. 필름 사진을 찍으려면 낮에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요즘이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 전에 저번 겨울에는 어떤 사진들을 찍었는지 다시 보고 있는데 유독 내 눈에 띄는 사진들이 있다. 유난히 튀는, 날것의 색감을 지닌 사진들.
보자마자 난 올해 초 설 연휴에 찍었던 사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부모님과 덕수궁 나들이 갔던 날로, 그날은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햇빛은 따사롭게 내리쬐던 걸로 기억한다. 덕수궁과 돌담길의 정취를 느끼며 한 컷 한 컷 소중하게 셔터를 눌렀더랬다. 빛이 좋아 사진이 잘 나올 것이라 잔뜩 기대하고 받아본 필름 사진들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아니,, 이거 왜 이렇게 나왔지?
36컷 중에 10장이나 무슨 필터를 입힌 듯 오묘한 색감으로 찍힌 것이다. 원인을 알고 싶어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니 아무래도 빛샘 현상 때문인 것 같았다. 심지어 그 10장 중에 절반 이상은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미노광 필름인가? *미노광 필름: 빛이 닿지 않아 상이 하나도 없는 깨끗한 상태로 현상된 필름. (미노광 필름은 정말 한 컷이 아깝고 아쉬워서 눈물이 난다.) 찾아본 결과 빛샘 현상은 촬영 도중 카메라의 뒤판을 열어 빛이 새어 들어가거나 카메라 자체 결함으로도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전자는 확실히 아니었지만 후자는 내가 알 길이 없어 아직도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원인을 아시는 분들의 댓글을 기다립니다.)
현상된 필름을 보고 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뭐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우니 사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빛이 새어 들어갔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얻게 된 게 아닌가?
필름 카메라로 일부러 이렇게 촬영하고 싶다고 해서 찍을 수 있는 사진도 아니지 않나?
의도하진 않았지만 연출한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 들잖아?
빛이 새버린 필름 사진? 오히려 좋아!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필름 한 롤이 모두 온전히 나온 적이 있는 사람들보다 한 컷이라도 예상치 못한 사진을 받아본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름 사진은 주변 환경과 변수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예상 밖의 결과물을 받아보면 처음에는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 화가 난다기 보다도 그저 아쉬운 마음이 크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찍어볼 걸, 하는 후회만 가득할 뿐. 하지만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진을 찍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오히려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랜덤 뽑기에서 가장 좋은 무언가를 한 번에 내 손으로 뽑은 느낌! 정말 딱 그 기분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필름을 현상하고 나면 깜짝 선물 같은 한 컷을 나도 모르게 기대하게 되는 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