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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Nov 20. 2021

Q. 필름 카메라는 왜 고장이 난 걸까?

A. 답은 건전지에 있었다.

새 필름 카메라를 구매하기 위해 여러 카메라 판매 사이트를 전전한 끝에 결국 중고거래 플랫폼에 들어가게 되었다. 요즘 새로 생산된 필름 카메라는 구하기도 힘들 뿐 아니라 나는 중고 별로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중고거래 사이트는 오히려 마지막 선택지였다.


생각보다도 '내 카메라'를 찾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마음에 드는 모델을 발견하면 가격이 너무 비쌌고, 가격이 합리적이면 작동하지 않는 고장이 난 제품이었다. 기왕이면 내가 원하는 모델을 사고 싶었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까다로운 조건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사실 내가 카메라 고르는 기준은 꽤나 간단하다.

가격이 6만 원 이하일 것

무조건 검은색 카메라

작동이 원활할 것

생활 흠집이 적고 가벼울 것


이것들을 우선 조건으로 찾아보는데 완벽히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카메라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3만 원도 채 하지 않는 자동 필름 카메라를 찾았다! 처음 보는 브랜드의 카메라였는데 가격과 디자인이 꽤 괜찮았다. 그래도 혹시 더 좋은 물건이 있을까 싶어 판매자에게 연락하는 대신 찜해두기 버튼을 눌러놓고 다른 제품을 더 찾아보려는데 판매자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배송비 포함해서 2만 5천 원에 드릴게요. 작동 잘 되는 것도 확인한 카메라입니다. 관심 있으시면 연락 부탁드려요."


배송비를 부담하면서까지 나한테 카메라를 팔겠다고?

이 사람 혹시... 사기꾼 아니야?


약간 의심이 들었지만 판매자 계정을 살펴보니 필름 카메라를 판매한 이력이 화려했다. 실제로도 카메라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인 것 같았다. 낯선 판매자의 신원이 어느 정도 확실해지니 없던 관심도 슬슬 생기는 것이었다. 제품을 천천히 살펴보는데 가격도, 디자인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작동 여부까지 모든 게 내가 바랐던 조건에 딱 맞는 모델이었다! 고민도 없이 판매자에게 연락했고, 거래는 아주 빠르게 성사되었다.

     

며칠 후 뽁뽁이와 신문지로 둘러싸인 필름 카메라가 아무런 설명서 없이 덩그러니 도착했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카메라를 꺼냈다. 생각보다 가볍고 내 손보다는 큰, 뭉툭하지만 귀여운 카메라였다.

나의 세 번째 필름 카메라.


얼른 사진을 찍어보고 싶어 일단 AA 건전지 두 개를 넣고 미리 사두었던 필름을 끼워 넣었다. 렌즈 뚜껑을 열자마자 필름이 1분가량 소음을 내며 저절로 돌아가더니 이내 멈췄다.


'이게 뭐지?'


당황스러웠지만 '필름이 감기는 소리겠구나' 하고 셔터를 누르는데 셔터가 눌리지 않았다. 계기판을 봐도 처음의 S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그 순간 내 사고 회로도 멈춘 듯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필름 덮개를 다시 열면 안 됐지만 나는 그새를 참지 못하고 열어버렸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필름이 필름 통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다. 필름을 넣자마자 자동으로 필름을 거꾸로 감아버린 것이다.


도통 뭐가 문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처음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판매자에게 연락했더라면 그는 친절하게 올바른 사용법을 알려줬을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 해결해본답시고 이틀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27000원어치 필름 세 롤만 날린 사람이 되었다.

     

며칠 후 판매자에게 카메라가 작동이 잘 안 된다고 조심스럽게 연락을 드렸다. 분명히 아무 이상 없다는 걸 확인했는데 그래도 배송하는 중에 고장이 난 것일 수도 있으니 번거롭겠지만 택배로 다시 보내주면 확인해보겠다고 하셨다. 만약 고장이 난 것이라면 판매자분이 직접 수리까지 하신 뒤 보내주실 것 같아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론 감사했다. 그렇게 택배를 보낸 며칠 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제가 확인을 해봤는데 작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보니까 구매자님이 건전지를 거꾸로 잘 못 넣으셨더라고요! 그럴 때 가끔 카메라 오작동이 있을 수 있다고 하네요. 고장 난 것은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시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건전지를 거꾸로 껴서 카메라가 말썽이었다고?


판매자의 전화를 받고 귀가 다 화끈거렸다. 정말 너무 부끄러웠다. 진짜 상상도 하지 못한 건전지가 오작동의 이유였다니... 생각보다 더 어이없는 내 실수 때문에 그분은 얼마나 더 황당했을까 싶다. 아직도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하는 것을 보니 나는 아직도 필름 카메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 것 같다. 나보다 카메라에 대해서는 고수인 판매자분께 연락을 드리지 않은 상태로 혼자 끙끙대 봤자 나는 끝끝내 문제점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2주에 걸쳐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갈 일만 남은 것 같다. 황당한 흑역사는 뒤로하고 나의 첫 번째 출사 장소는 어디로 해야 좋을지 이제부터 행복한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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