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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Feb 25. 2023

네 번째 필름카메라를 맞이하며

미놀타 줌 130c

취미로 필름사진을 찍는 분들 중에서 전문가에 버금가는 실력과 본인만의 감성을 지닌 분들이 많다. 요즘은 전문성을 갖추지 않아도 누구나 자신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오래됐지만 부끄럽게도 아직 입문자 수준에 머물러있다. 왜냐하면 그동안 그들만큼 사진을 열심히 찍지 못했기 때문이다. (찍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금값이 되어버린 필름가격은 필름사진 한 컷 찍는 데에도 부담이었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찾아갈 여유가 없었다. 춥고 황량한 겨울날씨에는 카메라를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사실 이 모든 건 다 핑계에 불과하지만 내가 사진을 꾸준히 찍지 못한 데에는 나름 분명한 이유가 있다.



https://brunch.co.kr/@rachelprk/5

( 번째 토이 필름카메라, 두 번째 앤티크 한 수동 필름카메라를 거친 뒤 아주 저렴하게 구매한 세 번째 자동 필름카메라.)



자동으로 터지는 플래시가 언제부턴가 작동하지 않았다. 플래시가 고장 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실내에서 필름을 낭비한 결과는 참담했다. 도대체 어디에서 뭘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사진들이었다.


앞으로 실내에서 사진을 찍기는 힘들겠구나, 아쉬웠지만 의외로 큰 상관은 없었다. 플래시만 터지지 않는 것이지, 그 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새 카메라를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던 것 같다.




바로 그날의 카페에서 찍은 사진. 빼낸 필름은 차마 찍지 못했다.


그러던 작년 여름날, 필름 한 롤을 다 써 카페에서 새 필름으로 갈아 끼우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필름이 자동으로 감겨야 하는데 어딘가 헛도는 소리만 들릴 뿐, 필름이 감기질 않는 것이다. 한여름인데도 등골이 서늘했다.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면서 수도 없이 겪었던 실수의 순간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해질 만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 손으로 직접 뒷커버를 열고 필름을 꺼낼 수밖에 없어 더 속상했던 것 같다. 카페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억지로 필름 빼내는 걸 지켜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장 난 플래시는 실내 촬영에 제약이 있었고, 필름을 잘 못 끼운 대가로 버리게 된 필름 한 롤은 한동안 필름카메라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왠지 모르게 필름을 갈아 끼울 때마다 긴장이 됐다. 괜히 아까운 필름만 버리게 될까 봐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늘 걱정스러웠다.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필름카메라를 멀리하게 됐다.  





며칠 전 생일에 새로운 필름카메라를 선물 받았다. 벌써 네 번째 필름카메라. 예전에는 가성비를 고려해 구매했다면, 이번에는 가격보다 오로지 성능과 상태에만 집중해 신중하게 골랐다. 개인적으로 검은색을 좋아하지만 색상도 일부러 이전 카메라와 다르게 실버를 선택했다. 모든 면에서 나에게 새로움을 주는, 완전히 다른 카메라를 갖고 싶었나 보다. 새 필름카메라에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할 순 없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쓰던 카메라에 필름이 스무 장도 넘게 남았는데 이 한 롤은 아끼지 말고 빨리 찍어야겠다. 마지막 현상은 부디 만족스러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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