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가 유행하기 이전에는 혈액형과 별자리가 있었다. 그때 그 시절, 각자 혈액형과 태어난 달의 별자리로 성격과 성향을 나눴더랬다. A형은 소심하고 B형은 화가 많아 다혈질이며 O형은 성격이 좋고 AB형은 4차원이다 등등. (지금 보니까 좀 어이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비과학적이지만 어찌 잘 들어맞는 그런 것들을 참 좋아했었다. 왜 재미로 보는 심리테스트라던지 성격 분석이라던지 그런 것들 있지 않나. 내 마음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재미로만 봐주시길*
그래서 나는 mbti가 마냥 터무니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과하게 맹신하지도 않는다. 맹목적으로 믿을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혈액형, 별자리, mbti 모두 어디까지나 가볍게 생각했을 때 가장 재미있는 법이다. mbti는 처음 보는 사람과 아이스 브레이킹용 대화를 나누기에 특히 부담이 없는 소재이다. 그래서 상대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나름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낯선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에 쓰일 땐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상대를 mbti 유형 하나만으로 판단해 버린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와 관련된 면접 일화를 한번 들어보시라.
모 면접을 보기 전 제출할 서류에 mbti 유형을 적으라는 문항이 있었다. 많고 많은 질문들 중에 왜 하필 mbti를 물어보는 걸까? 썩 내키진 않았지만 적어서 제출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가벼운 질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면접 초반부터 나의 mbti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뭐, 물어볼 수 있지'
하지만 면접관은 면접자를 앞에 두고 내 mbti 유형을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특징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특징 몇 가지를 읊는 면접관을 보고 있자니 나는 면접이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느껴졌다. 애써 좋지 않은 예감을 외면한 채 나는 면접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접관은 이어 질문했다.
'0000 유형이라고 하셨는데 I (내향), E (외향)의 비율이 어떻게 되시나요?'
대충 알고 있는 비율을 말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라며 구구절절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는데 이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면접관들은 그 이후에도 여러 질문을 했지만 나는 단지 mbti 유형 하나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빠르게 파악하고자 하는 그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그 자리가 점점 불편해졌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하든 내 mbti 유형과 연결 지어 생각한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중요한 것들을 계속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주변에서 건너 건너 들은 적은 있었지만 나도 그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게 정말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다른 의미로 놀라웠다. 그리고 mbti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애초에 선호하는 mbti 유형을 적어두면 서로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겠지만) mbti 외에도 궁금하다면서 꽤 집요하게 물어보는 질문들이 내 경력이나 경험보다 사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에 면접 내내 유쾌하지 않았다. 면접이 끝을 향해 갈수록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이 면접을 그저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궁금한 것들이 있다면 물어보셔도 됩니다.'라는 말에 나는 다소 상투적인 감사 인사와 함께 궁금했던 것들을 질문했고 그렇게 면접은 끝났다. 정말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었지만 속으로 삼키기로 했다.
"mbti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사람 성격은 정확히 16가지로 나눌 수도 없을뿐더러 인간은 다방면으로 입체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mbti 유형과 업무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왜 그렇게 mbti를 물어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작심 에세이. 매주 키워드 또는 문장에 대한 짧은 글 한 편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누자. 혹여 중간에 멈추게 되더라도 언제가 되었든 또다시 글을 써보자. 너무 오랫동안 멈춰있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