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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Feb 28. 2022

그래도 계속 찍어보기로 했다.

 필름 카메라만 있다면 어디든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작년 새로운 필름 카메라를 장만한 이후로 지금까지 딱 필름 한 롤을 겨우 채워 현상했다. 그리고 지금은 열 컷 남짓 남은 두 번째 필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필름 사진을 더디게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코로나 시국의 필름 수급 문제로 필름 가격이 너무 많이 오른 것이다. 


만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구매 개수 제한까지 더해져 필름 구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3만 원도 하지 않던 내 중고 카메라의 반값이나 되는 필름이라니. (정말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 아닌가?) 아무리 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라도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생기면 마음 놓고 즐기지 못하기에 이렇게 취미 하나를 잃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사진 찍는 것을 시시하게 그만두기 전에 꼭 알고 싶었다. 이 카메라가 어떻게, 잘 작동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진이 어떻게 나오는지! 그래서 두 달 동안 열심히 사진을 모아 36장을 다 채울 수 있었다. 친한 친구를 만날 때, 밤에 길거리를 걸을 때,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등등 일상에서 사진을 찍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장소를 이 소중한 필름에 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곧장 향한 경복궁.


 경복궁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한 곳이다. 높은 빌딩 숲 사이에 건재하고 있는 경복궁을 보고 있으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다른 시공간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인지 유독 생각이 복잡해질 때 넓은 궁 안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경복궁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나에게 내면의 힘을 다질 에너지를 주곤 했다.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마음에 잔잔한 위안을 준달까. 그 장소 일대가 나에게 특별한 추억이 많은 곳이라서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궁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경회루까지 걸어가 봤다. 나무는 잎도 없이 앙상하고 연못은 다 얼어있었지만 경회루는 그대로 그 모습이었다.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는 경회루. 한참을 서서 바라보면서 얼마나 크고 흥겨운 행사를 열며 축하했을지 상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그렇게 경복궁을 나와 서촌을 한참 걷다가 괜찮은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를 발견했다.  나는 따뜻한 라테 한잔을 주문했다. 커피 한 모금에 얼었던 손과 몸을 녹이면서 이 날 하루를 음미하는데 문득 카메라를 들고 나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름 가격이 점점 오르면서 한 컷이 조심스럽고 소중해진 만큼 필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제대로 담으려 노력했다. 이 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경복궁과 서촌을 걸었더니 10,000보를 훌쩍 넘겼는데 마치 뚜벅이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에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여행 무드를 이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앞으로도 필름 여행을 계속해보려고 한다.


 필름 가격이 올라 힘들어도,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횟수가 조금 줄어도 한 장소 일대를 정해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는 '나만의 필름 여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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