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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치노매드 Apr 19. 2022

사람은 자란다

어느새 한뼘 켜버린 아이

이른 아침에 잠이 깼다. 음력 새해를 하루 앞둔 . 징검다리 연휴 첫날이기도 하고 이른 시간이기도 해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주전 정리 없이 지나가버린 일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짧은 숲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나무가 보인다. 은서는 항상  나무 밑에 타고 나간 킥보드를 세워두거나 가지고 나간 가방을 걸어두거나 했다. 가까이 가보니 역시나 은서의 물건들이 보인다. 열심히 뛰어놀았던지 겉옷도 벗어 두었는데 정작 은서는 놀이터에 보이지 않았다. 연달아 붙어 있는  놀이터에 있나 싶어 다시 작은 숲길을 걸어  놀이터로 갔다. 하지만 뛰어놀고 있어야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게 뭐지.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혹시나 잘못 보았겠지 싶어 다시 찾아보았지만 은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까 처음 도착한 놀이터에서 아이를 못 보고 지나친 것은 아닌지 싶어 바쁜 걸음으로  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아이들 몇몇이 놀고 있었지만  속에 은서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싶었다. 급한 순간엔 머리는 느려지고 심장은 빨라지나 보다. 주저하며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얘들아, 혹시 은서  봤니?”

아이들 몇몇은 은서가 누구냐며 되물었고 몇몇은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또래의 남자아이 하나가 말했다.

누구요? 은서? 윤은서요?”

 맞아.”

다행히 아는구나 싶어 살짝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내,

몰라요. 오늘은  봤어요.”

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어디 갔을까. 이렇게  옷을 두고 갔다면 멀리는 안 갔을  같은데. 종종 놀이터  관리 사무소의 화장실을 쓰기에 혹시 거기에 있나 싶어 종종걸음으로 가보았다. 주말 저녁이니만큼 관리 사무소는 닫혀 있어 썰렁했고 역시나 은서는 거기에 없었다.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을 돌려 어쩔  없이 놀이터로 돌아오는 길에 놀이터에서 자주 놀던 유미 생각이 났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유미는 은서보다   많았다. 은서는 유미와 죽이  맞는지  따랐다. 유미 언니가 나오는 요일은  기억했다가 시간에 맞춰 놀이터로 나가곤 했다. 주말에도 언니와 만나  놀았던 터라 혹시  아이를 따라간 것이 아닐까 싶었다. 유미네 전화번호를 몰라 고민하다가 유미네와 친분이 있다는 은서와 같은  친구가 생각이 났다. 급한 마음에 친구 할머니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감사하게도 금방 받아주셨다.


, 은서 엄마~”

아이고, 주말에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바쁜  없어요.”

네네. 다름 아니고 은서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유미네   같은데 제가 유미네 번호를 몰라서요.

혹시 아시는지 싶어 전화드렸어요.”

 제가 알아요.”

 괜찮으시면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이가 말도 없이 가버린  같아서요.

그래요. 보내드릴게. 지금 운전 중이라 잠깐 세울게요.”

아이고 너무 죄송해요. 번거롭게 해 드리네요.”

아니에요.  보내줄게요.”

 감사합니다.”


잠깐의 통화 중에도 눈은 계속해서 아이의 자취를 찾고 있었다. 놀이터 곳곳을 다시 꼼꼼히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역시나  나무 놀이터에는 없다.  놀이터에 다시 가보고 유미네에 전화해봐야지 싶었다.


 놀이터에 다시 들어섰는데   구석에서 사람 인기척이 난다. 서둘러 가보니 은서가 동네 친구 준우와 같이 있었다. 아이고. 찾았구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은서야.”하며 준우 아빠와 준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뵙네요. 준우야, 안녕

준우네와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은 , 은서에게 다시 말했다.

은서야, 엄마가 아까부터 찾고 있었어. 이제 집에 가자.”

준우네도 내가 오기를 기다린 듯 집에  채비를 하고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조용한 숲길을 지나 집으로 오면서 은서에게 말했다.

은서야, 혹시라도 놀이터 밖으로 가버리면 엄마가 너를 찾게 된단다.”

엄마  놀이터에 계속 있었어.”

그래 알았어. 엄마가 너를  찾았나 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요일 저녁이 지나갔다.




며칠 , 옆 동에 사는 준우 어머니가 카톡을 보내왔다. 준우네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은서의 사진이었다. 사정인즉슨, 은서가 놀이터에서 매일 만나는 아이들과 놀다가 준우네 고양이가 보고 싶어 친구 한 명과  함께 찾아갔다는 것이다. 은서가 엄마에게 연락해달라 하여 내게 카톡이 온 것이었다. 아이고 폐를 끼쳤다며 준우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고 아이에게 이제 집으로 오라고 했다.


대화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준우 어머니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은서는 고양이를 계속 만지고 싶어 준우네에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고 준우 어머니가 저녁을 먹이고 보내도 되겠냐고 전화를  것이었다. 그렇게 늦게까지 친구네 집에 있을  몰랐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준우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이미 짜장면까지 주문했다는 준우 어머니의 말에 그럼 식사를 마칠 때쯤 데리러 가겠다고 말을 전하고 통화를 마쳤다. 하던 일을 대충 정리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갔다. 퇴근시간 즈음에 집에 도착하자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이모님은 “은서가 아직 안 왔어요.”라고 하신다. 그리고 민서는 한 시간 전에 잠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대답한다. , . 은서는 친구 집에 있대요.”


이모님은 댁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민서를 유모차에 태우고 은서를 데리러 갔다.

딩동 벨소리가 울리고 준우네 문이 열리자 은서가 고양이를 안고 나왔다.

은서는  동생에게 보여주겠다며 고양이를 안고 현관문 밖까지 나와 유모차에 누워있는 민서에게 다가갔다. 준우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나는 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은서야, 준우네에 오래 있었네. 이제 집에 가자.”

엄마, 놀이터에 킥보드가 있어.”

그래 알았다. 놀이터로 가자.”


해가 완전히 넘어가고 여덟 시가 가까워진 시간 우리는 한적한 동네를 말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놀이터에 다다랐을  나는 은서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은서야, 고양이 보고 싶었어?”

“응. 만지면 가르릉 거리면서 애교 부리고 귀여워.”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는 은서가 되어 오늘 하루를 그려본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 친구네를 찾아가는 모습, 고양이를 안는 모습,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는 모습.


오직 엄마 품에만 안겨 있던 아이가 어느새 엄마 없이 놀이터에도 가고 친구네도 잘 찾아가는구나.

아이는 자연스럽게 크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의 엄마에 머물러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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