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이치노매드 May 20. 2022

묘한 차이

첫째 그리고 둘째

우리 집에는 아이가 둘 있다. 태어난 순서에 따라 첫째와 둘째로 부르고 있다. 대개 그렇듯(?) 첫째는 말을 잘 안 듣는다. 그러다 보니 둘째는 더 말을 안 듣는다. 이렇게 말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첫째는 대놓고 말을 안 듣는다. 그리고 둘째는 교묘하게 말을 안 듣는다. 첫째를 혼내다 보면 사실 더 말을 안 듣는 건 둘째였다.

 
이런 식이다. 둘 다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는 때가 있었는데 가기 싫다고 때를 쓴 건 첫째지만 정작 출석률이 안 좋은 건 둘째였다. 첫째를 혼내던 중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회초리 어딨니?” 그럴 때 첫째는 고개를 뻗대며 씩씩대지만 둘째는 사슴 눈망울로 “엄마 여깄어요.” 하며 회초리를 두 손으로 건넨다.


왜 이런 인식과 통계의 오류가 생긴 걸까.




#1 인간관계 속, 주어진 위치가 다르다

첫째에게는 일단 주어진다. 집안에서 드디어 몇십 년 만에 새로이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기쁨으로 온 가족의 관심이 시작된다.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 삼촌에게 삶의 기쁨이다. “오늘 처음으로 배밀이했어.” “오늘 응가 3번 했어.” “오늘 엄마마마 했어.” “오늘 살짝 걸었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한바탕 신인류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가 자정작용을 이루는 시점에서 이윽고 둘째가 태어난다. 둘째는 막 태어났을 뿐인데 이미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엄마와 아빠도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에 손놀림이 익숙하다. 그리고 내 위에 누가 있다. 언니라고 불리는 모양인데 되게 아는 체를 하며 나를 혼낸다. 자기도 아직 기저귀를 차면서 똑바로 기어 다니라고 내 발을 잡는다. 나는 언니가 입던 옷을 입고 언니가 하던 성장과정을 거친다.


성장하면서 기술이 하나씩 늘어가는데 엄마와 아빠는 뛸 듯이 기뻐하지는 않고 그저 기뻐한다. 그리고 꼭 뒤에 이런 말을 붙인다. “확실히 둘째가 빠르네. 언니를 보고 자라서 그런가?” 둘째는 생각한다. ‘아, 이런 행동을 해서는 내가 주목을 못 받는구나. 그럼 리액션을 더 크게 해야지.’ 작게 울 것 더 크게 는 등 관심을 얻기 위해 노오력한다.  


정리하자면, 첫째는 주어지는 것이 많고 둘째는 그걸 노력해야 쟁취할 수 다. 덕분에 둘째는 빠른 눈치 등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게 되지 않았을까.



#2 경험에 의한 학습효과 

둘째가 태어나는 시점에 부모는 임신, 출산, 육아의 유경험자이다. 이미 한번 해봤다는 경험은 여유와 노련함을 가져다준다.

 

첫째가 태어난 날이 생각난다.

예정일이 가까워진 어느 날 새벽, 배가 사르르 아파오기 시작했다. 진통 주기를 체크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진행이 빨리되어 진통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진통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고통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되니 너무 아팠다. 남편도 나도 처음이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빨리 낳고 싶었다. 다행히 병원에 도착한 지 2시간 만에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다. 다만, 우리 부부는 가족분만실에서 진통을 함께 하며 영광의 상처를 나누었다. 나는 눈의 실핏줄이 터졌고 남편은 이에 하도 힘을 주어 얻어맞은 듯 입 안의 얼얼함이 며칠이나 지속되었다.

 

몇 년 후, 둘째를 낳으러 다시 병원에 갔다.

병원에 도착해니 진통은 아직 심하지 않았다. 남편은 챙길 식구가 늘었다며 당분간 자기가 열심히 힘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리곤 진통이 약간 주춤하던 때에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요 앞에서 저녁 먹고 얼른 오겠다는 사람은 한 시간이 가까워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진통이 시작되자 슬며시 무서워졌다. 분만실을 오가던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여보, 어디예요?”

“응 저녁 먹고 커피 마시고 있어요.”

남편의 차분하고 안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행여 뱃속에 아이에게 이런 감정이 전달될까 봐 겨우 참았다.

“아.. 그랬구나. 여보, 나 진통이 시작돼서 아픈데..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곤 얼마 안 가서 진통이 시작되었고 둘째도 무사히 태어났다. 물론 내 눈과 남편의 이도 멀쩡했다.


이렇듯 첫째를 통해 우리는 배웠고 출산 이후 육아에도 자연스레 이어졌다. 둘째가 떼를 쓰거나 울면 남편이나 나는 크게 대응하지 않고 기다렸다. 아이가 어느 정도 감정이 잦아든 다음 달래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는 응석을 부려 얻을 수 있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습득해갔다.



#3 첫째와 둘째는 독립된 인간

앞선 고찰들이 무색하지만, 따지고 보면 둘은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독립된 개인이다. 부모의 인지적 용이성으로 태어난 순서에 따라 첫째, 둘째 (혹은 1번, 2번)라 이름 붙이며 부를 따름이지 둘은 원래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러니 하는 행동과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첫째는 신기하리만큼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며 사람 사이에 관계 맺기를 좋아한다.


어느 저녁 시간, 첫째는 조용히 나를 부른다.

“엄마, 사원이 같이 볼래?”

사원이는 첫째가 기르는 장수풍뎅이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변해가고 있었다. 성체가 될 때까지 조용하고 그늘진 곳에 두고 키우는데 장수풍뎅이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하루에 한 번만 보는 중이었다.


아이는 장수풍뎅이를 신기해하는 나와 같이 보려고 퇴근시간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 마음이 기특해, “응, 엄마 너무 보고 싶어. 고마워!”하며 활짝 웃으며 답했다.


둘째는 상황판단이 좋고 습득이 빠른 편이다. 아이를 야단칠 때 둘째는 어느 순간 덥석 내 목을 끌어 안고 원숭이처럼 매달려 말한다. “엄마 잘못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슬픈 생각을 하며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마주하게 되면 첫째는 승질을 부릴지언정 어떻게든 하고 말지만 둘째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의 본질에 접근해가며 자체를 부정하는 방법을 썼다.  참고글: 유치원에 왜 가야 하는가?




아침이면 나는 첫째를 위해 빵을 굽고 둘째를 위해 밥을 차린다. 남편이 먹는 호박 수프까지 챙기다 보면 일과가 막 시작되었을 뿐인데 기분은 정오를 훌쩍 넘긴 것 같다. 각자 다른 곳에서 하루를 보낼 가족들이기에 바쁜 아침이지만 한 끼는 입맛대로 챙겨주고 싶다.


나를 위해서는?

제육볶음으로 상쾌한 아침을 시작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딸에게 들려주는 동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