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인 듯 신축 아닌 신축 같은

집 하자 고치면서 살다 소송까지 겪었던

by 마케터유정

나는 아무래도 인간인가 보다. 세상에 길들여지고 사회화된.


동물들은 예민한 감각으로 닥쳐올 재앙을 예측하고 위험을 피해 미리 이동한다고 한다. 2008년 때 쓰촨성 지진이 발생하기 3일 전 수십만 마리 두꺼비떼가 이동했다는 기사가 있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대지진 발생 2일 전 100여 마리 돌고래 집단 폐사했다는 보고도 있다. 1999년 터키 대지진 당시에도 나흘 전부터 개들이 울부짖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우리 '인간' 사회에서는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며 묵묵히 한우물을 파는 사람에게 더 점수를 주는 듯싶다.


인간 사회는 아직 한 곳에 그대로 머무르면서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을 예찬하고, 계속해서 싫증을 내고 변화를 거듭해 가는 사람을 비하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사회적인 가치관이 변화를 추구하려 할 때 큰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2018. 다산초당


감히 현재를 부정할 힘이 나에게 있었을까. 만약 내가 우리 집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과연 지금의 내가 존재할까. 지난 6년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없었다면 말이다.


따져보니 그 집에서 만 4년을 살고도 몇 개월을 더 살았다. 그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기까지 1년 7개월이 더 걸렸다. 그 집에 들어갈 땐 삼십 대 초반이었는데 나올 땐 어느새 마흔에 가까워 있었다. 삼십 대를 돌아보면 그 집에서 살았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셈이다.


그 집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어디서 어떻게 첫 단추를 꿰었던 걸까.




평소와 다르지 않던 하루였다. 사무실에서 일과를 마무리할 무렵 이모님(베이비시터)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님에게 전화가 오면 늘 살짝 겁이 났다. 혹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하지만 이모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집주인이 다녀갔다는. 아래층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는.

곧 집에 가겠다고 했다. 싱크대 등 물 사용을 하지 마시고 저녁 준비는 안 하셔도 되겠다고 말했다. 애들은 잘 있다는 말에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퍼뜩 아침에 집주인에게 걸려온 전화가 떠올랐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묻던 집주인. 보통은 문자를 주고받는데 전화를 하다니 웬일인가 싶었다. 무슨 일이시냐고 물었더니 그쪽은 얼버무리더니 이내 통화를 마무리했다. 기분이 애매했지만 사무실에서 바쁜 업무에 쫓기다 보니 더 이상은 집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사실 집주인에게 전화가 오면 별로 즐거울 일이 없다. 나눌 이야기는 집과 관련된 이야기뿐이고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용을 떠나서 집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머리가 아팠다. 예전 살던 집과는 달리 여기로 이사 오고 나서 집주인과 연락하는 일이 잦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어느 순간 내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통화를 마치고 나면 내 표정이 굳어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든 꼭 전해주고 싶다. 이사를 갔는데 집주인과 연락을 자주 하게 된다면 별로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니 가능하면 빨리, 기회 될 때 그 집을 나가라는 말을.




우리 집은 작은 신축빌라였다. 집주인이 건물을 지었는데 1, 2층을 업무공간으로 쓰고 3, 4층은 살림집으로 만들어 세를 놓고자 했다. 두 가구뿐인 아담한 사이즈로 집 구조도 달랐다. 우리는 거실과 주방이 3층에 있고 방들은 4층에 있는 복층 집에 살았다. 옆 집과는 3층을 나누어 쓰는 구조였다. 우리가 입주하고 한동안 옆 집은 마땅한 입주자가 없는지 비어있었다. 그러다가 몇 달이 더 지나고 혼자 사는 젊은 남자가 이사를 왔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지 얼굴을 마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저 현관문 밖에서 들려오는 문 열리고 닫는 소리로 그의 기척을 알 수 있었다.


신축이었지만 공사를 빠르게 진행해서였는지 우리가 이사를 들어온 뒤에도 건물은 계속해서 부분 부분을 고치고 또 새로 만들었다. 집주인은 살다가 불편한 점이 있거든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친절한 응대였지만 실제로도 연락을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4층 테라스로 이어진 외벽은 내장재가 스티로폼으로 되어 있어서 문을 닫고 여는데 견고하지 않았다. 때문에 문을 열고 닫는 잠금장치가 쉽게 풀렸다. 집주인에게 몇 번 연락을 해서 손도 봐주었지만 결국 고쳐지지는 않았다.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집 안 계단은 꽤 가파랐는데 잡을 수 있는 지지대가 없어서 불편했다. 특히 내려갈 때 위험하겠다 싶었다. 계단 얘기를 했더니 집주인은 와서 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난간봉을 달아주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복도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계단에 물이 고여있곤 했는데 4층 테라스로 올라가 고쳐야 했다. 4층 테라스는 우리의 전용공간이었기에 집주인은 몇 사람과 함께 우리 집에 들락거리는 날이 자주 있었다. 이때 나는 둘째를 막 낳고 출산휴가 중이었고 체력이 달렸던 차라 누가 집에 방문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건물을 고쳐야 하긴 했기에 참고 있던 중이었다. 몇 번째 우리 집에 오던 날 나는 집주인에게 물었다.


“언제 끝나나요?”
“왜요?”

“제가 좀 쉬어야 해서요.”

뭔가 이상한 대화라고 생각되었지만 그냥 대답해주었다. 집주인이 우리 집을 들락거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눈치였기에 ‘당신 지금 우리가 사는 집에 들어와 있다’는 얘기를 해주어야겠다 싶어 건넨 물음이었다. 이후 한동안 집주인은 찾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지 실무 방법이 알고싶다면? '실전! 보증금 지키기' 바로가기!

소송 신청하기, 서류 작성 꿀팁 대공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