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니 어쩌다 민사소송을 하게 되었다. 남편과 긴 고민 끝에 법조인의 도움 없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해가며 소송을 이어갔다. 덕분에(?) 시행착오도 몇 차례 겪었다. 1년이 넘는 소송기간 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몇 가지 질문을 떠올려 본다.
변호사를 선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소송은 진입장벽이 높았다. 도저히 말로 안 되고 합의에 이르지도 못해 소송을 하게 되었지만 법원에 간다는 사실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류를 작성할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팠다.
이제와 돌아보니 ‘소송’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던 것 같다.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절차도 모르고 어떻게 서류를 준비하고 접수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낮았다. 반대로 재판 절차를 잘 모를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은 컸다. 실제로 우리는 심문 조사에 참석하라는 송달 자체를 몰랐기에 법원에 참석하지 못했고 그 결과 어렵게 신청했던 임차권등기명령이 해제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잘알’, 즉 법률 사무소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게 된다.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이해가 된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점은 법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었다면 변호사 수임 여부를 떠나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일임할 것이 아니라 재판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송 대리인은 적어도 당사자는 아니다. 재판의 절차를 대신 진행해 주고 몰라서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을 막아주는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사건 자체를 소상히 알지는 못한다. 때문에 내가 세운 논리에 대하여 법률적으로 자문해주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편이 현명하다. 너무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소송을 맡기면 양 측이 서로 동상이몽일 수 있다.
특히나 소액사건의 경우에는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이 하루 100여 개에 이르는 것처럼 소액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 역시 내 사건만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현실적이다.
때문에 소송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물어보는 것과 어느 정도 알아보고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 테면, 판결 결정문을 받고 난 뒤, “변호사님, 이것도 채권으로 볼 수 있나요? 언제까지 만료되는 걸로 보나요?”라는 질문과 “이게 뭔가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는 다르다는 뜻이다. 내가 듣고자 하는 답변이 명료하고 핵심을 짚어주기를 바란다면 질문 역시 핵심을 물어야 한다.
전자소송을 어떻게 하지? (feat. 한국의 전자소송&법원 서비스)
통계에 따르면 소액 민사소송의 경우 나 홀로 소송으로 진행되는 비율이 75%에 이른다고 한다.* 비용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 같은 ‘법알못’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점도 나 홀로 소송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전자소송 사이트에 접속하면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상대측이 송달문서를 확인했는지, 우리가 제출한 서류가 잘 전달되었는지 등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서 편했다. 기일변경을 신청할 때도 증명서류를 첨부하여 간단히 제출하면 되는 등 절차가 편리했다. 아마도 컴퓨터로 수강신청을 했던 세대라면 어렵지 않게 전자소송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해외 관공서에서 간단한 서류 하나 떼려 해도 시간이 꽤나 걸리는 점을 고려해보면 우리나라 시스템이 참 빠르고 정확하다고 생각되었다. 전자소송 홈페이지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느냐도 소송의 촉매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판례도 참 잘 정리되어 있다. 판례 검색해주는 플랫폼도 여럿 있으며 사건 번호를 알고 있으면 법원의 ‘판결서 사본 제공 서비스’를 통해 문서를 받을 수 있다.
소소해 보이지만 확실한 도움
1. 도우미가 있습니다
임차권등기명령, 지급명령신청. 말도 어렵고 준비서류도 복잡하지만 이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만약 제출한 서류에 수정사항이 있거나 하면 법원에서는 보정명령을 내린다. 보정 명령서에는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고 가르쳐 준다. 그래도 모를 경우 전화해서 물어보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그들은 우리가 사연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간절해서 전화했다는 걸 안다.
또한 요즘에는 ‘임차권등기명령’, ‘준비서면 쓰기’ 등 궁금한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작성하는 방법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사례를 공유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2. 일상생활 배상책임 보험 있으세요?
일상생활 배상책임(이하 일배책) 보험이라는 게 있다. 보험 자체를 모르거나 가입된 분들도 이런 보험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이런 보험이 있는지 몰랐고 소송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일배책에 가입되어 있다면 민사소송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 변호사 수임료를 포함한 일정 금액을 지급받을 수 있다. 아울러 일배책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주택에 거주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하여 누수, 화재, 가전제품 고장, 도난 등 조건에 따라 일정 부분 금액을 보상받을 수 있다. 미리 알아둔다면 필요할 때 정말 큰 힘이 된다.
내 일은 결국 내가 해야 하는구나
1. 장기전을 치를 마음의 준비
만만치 않지만 뜻이 있다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 다만,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지치기에 장기전을 치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소송을 기꺼이 삶의 일부로 취급할 수 있는!
한두 번 변론기일을 다녀오고 나니 남편과 나는 변론기일이 잡히면 반차를 내고 법원에 다녀온 뒤 점심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다음번 변론에 대한 내용을 논의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몇 번 반복되니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쨌든 소송을 치르기로 했다면 변호사의 힘을 빌리든 아니든 지친다. 왜냐하면 내 일이기 때문이다. 변호사에게 맡기고 잊어버리는 일은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 이왕 시작한 소송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소송을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함께 뛸 페이스 메이커가 있다고 해서 내가 마라톤을 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2. 끝나지 않는 법리.. 공부를 해야 끝난다
판결이 나고 보증금을 돌려받았음에도 한동안은 법원, 소송 이런 단어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몇 주쯤 지나자 문득, 상대편이 선임한 변호사의 비용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원고 일부 승소였기에 소송 비용의 일부는 우리의 몫이었다.(적은 비율이었지만) 아마도 변호사 비용은 전체 소송비용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송비용을 청구하는 것도 다시 절차를 밟아서 결정문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과연 피고 측에서 청구를 할 것인지 가늠해보려면 전체 소송 비용을 계산해 보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켰다. 다시 책과 인터넷을 찾아가며 소송 비용을 계산했다. 계산해보니 우리가 부담할 소송비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과연 이 금액으로 상대측에서 소송비용을 내라고 연락해올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법조인에게는 간단한 내용이겠지만 나는 이 간단한 사항을 확인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별도의 비용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검색을 해보니 구청에서 무료로 법률 자문을 해주는 민원상담 프로그램이 있었다. 잘되었다 싶어 면담을 신청했다. 묻고자 하는 질문을 미리 정해갔다. “재판이 끝났는데 변호인을 선임한 상대측에서 소송비용을 청구할지 궁금해요.” 도 좋은 질문이지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변호사는 소송비용을 어떻게 산정하는지 일반적인 얘기로 답할 것 같았다.
이미 책에서 읽은 얘기를 다시 묻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
“사건이 종결되었고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어요. 소송비용이 저희 측 000원, 피고 측 000원 나왔는데요. 이 걸로 피고 측에서 소송비용을 청구할지 궁금해서요."
변호사는 관련 절차를 알려주며 소송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소송비용 확정결정 신청서’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노력과 시간 대비 얻을 것(금액)이 확실히 크거나 반드시 받아내겠다는 의지가 있거나 하다면 진행하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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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