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또 바뀌었다. 작년 여름에 시작된 소송은 어느덧 일 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얇은 코트를 꺼내 입으며, ‘작년 법원 갈 때 입었던 거네’ 하고 혼자 생각했다. 남편과 법원으로 가는 오르막길을 걸으며 이제는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는 말을 건넸다. 상대방 측에서도 제출할 증거나 주장할 내용이 더는 없었다.
마침내 판사는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했다. 판결일에는 법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판결문은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열람이 가능했다. 오늘이 마지막 법원에 출석하는 날인 셈이었다.
최종 변론을 마치고 한 달 뒤.
판결일 아침이었다.
사무실에서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 우리 사건이 불려지고 있겠지. 집에서 남편과 차분하게 판결문을 열람하고 싶었다. 궁금한 마음을 꾹 참고 일과를 보냈다.
집으로 와서도 왠지 아이들을 재우고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판결문을 받으려고 1년 이상을 기다렸다. 몇 시간쯤이야 더 기다릴 수 있었다.
오롯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겸허히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소화할 수 있는 시간에 열어보고 싶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거실 책상에 혼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판결문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파일을 열었다. 숨을 죽이고 천천히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판 결
사건 XXXXXXX 임대차보증금
원고 000
피고 000
주 문
피고는 원고에게 XXX원 및 O월 O일부터 O월 O일까지는 연 5%, 이후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눈물이 났다.
그토록 원하던 내용이 판결문에 적혀 있었다. 법원에서 우리의 주장을 인정한 것이다.
가장 쟁점이 되었던 부분은 하수구 역류를 누수의 원인으로 볼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이를 인정한다면 누수로 인한 수리비와 인테리어 비용 등은 우리의 몫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하수구 역류로 인한 손해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원고 일부승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피고 집주인이 부당하게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난 것이다.
판결금액에 대하여 판결 이후로는 연 12%의 이자(소송에서 청구할 수 있는 최고 금리), 판결 전까지는 연 5%의 이자를 붙인다. 특히나 마음고생이 많았던 남편에게 “우리 그동안 적금 든 거였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피고 측 주장은 대부분 들어주지 않았기에 항소할까 염려되었다. 집주인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항소하는 것이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소심에서 새롭게 꺼낼 얘기가 있었다면 1심에서 했겠지 싶었다.
또한 대리인을 선임하든 안 하든 재판하고 있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머리에 돌을 하나 얹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집주인이 다시 재판을 진행할까 싶었다.
주문에 이 판결은 가집행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기에 얼마간 집주인의 연락을 기다렸다가 회신이 없으면 강제집행을 신청하여 빌라를 경매에 넘기는 절차를 알아보고 있었다.
다행히 판결이 나고 얼마 지내지 않아 집주인 측에서는 그동안 반환하지 않았던 전세 보증금을 보냈다.
1년 전 합의 자리에서 돌려주지 않은 전세 보증금보다 수리비가 더 나왔다며 오히려 우리에게 돈을 받아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던 집주인, 자기와 관계없다며 선을 그었던 공인중개사,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신축’인데 하며 고개를 내저었던 조정위원, 현관문을 부수었을 때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며 되묻던 상담 변호사.
그들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비수처럼 박혔던 그 말. 나를 바라보았던 시선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구순의 할머니가 된 나를 만난다면 할 말이 생겼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우리는 변호사와 싸운 게 아니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 잠잘 시간 줄이고 밥 먹을 시간 아껴가며 공부한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너무나도 억울하고 절실했다. 그래서 내 억울함과 싸웠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절실했기에 준비서면을 배워가며 썼고 증거를 차곡차곡 준비했고 판례를 뒤졌고 상대방의 논리에 반박근거를 찾았고 늦는 남편을 기다려 달라고 재판장님에게 사정했다.
절실하지 않았다면 과연 오늘이 왔을까.
물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았다면 한층 수월했을 것이다. 겪지 않아도 되었을 수모와 마음고생에서 벗어났을지 모른다. 다만, 경험은 배움을 주기에 몸과 마음은 편했을지언정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있었을까 싶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를 떠올리며 몇 번은 눈물을 찔끔 흘렸다. 지금도 그때를 곱씹을 때마다 울컥한다. 그 당시를 정리하자면 딱 두 가지 모습이었다. 많이 울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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