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코로나가 왜 나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by 마케터유정

계절은 어느덧 봄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몇 달째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사무실에는 운전으로 출근이 가능한 사람들만 당번을 정해 출근을 하였다.


모든 회의는 화상이나 전화로만 진행되었다. 초등학교 입학식은커녕 학교도 가보지 못한 첫째와 유치원에 등록만 한 둘째를 끼고 집에서 일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누적 확진자가 2000만 명을 넘어서서 국민 대부분이 코로나를 경험했지만 그때는 신규 확진자가 전국을 통틀어 하루 백 명 정도였다. 코로나가 발발한 그 해, 누적 확진자 수는 5만 명 정도였으니 정말 초기였던 셈이다.


코로나로 우왕좌왕하던 학교에서는 마침내 원격수업과 등교를 병행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요일에 따라 아이들은 일주일에 2번씩 학교에 갔다.


재판을 몇 주 앞둔 주말 오후, 우리는 심심해하던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키즈 카페에 갔다. 주말 대부분을 집에서 뒹굴다가 월요일이 되었다. 등교준비를 하는데 학교에서 다급하게 알림이 왔다.


우리가 다녀간 키즈카페에 확진자가 다녀갔다며 혹시 키즈카페에 다녀온 친구들이 있다면 선제적 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보건소에 갔다. 줄은 길었고 우리는 삼십 분을 기다렸다가 눈물이 찔끔 나는 PCR 검사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저 주말을 길게 보내는 셈 치고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보건소에서는 가족들이 음성이라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둘째만 빼고 말이다. 이상하다 싶어 보건소에 전화를 걸었다. 뜸을 들이던 보건소 담당자는 몇 번을 확인을 하더니 둘째는 양성이라고 말했다.

‘응? 둘째만 코로나에 걸렸다고?'


그러고는 차분히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을 떠보니 어느 새 둘째와 나는 생활치료센터에 와 있었다. 증상이 경미하거나 무증상인 경우 이곳에 와서 바이러스의 파력이 떨어질 때까지 격리되어 지내게 되었다.


지금은 검사일로부터 7일 차에 격리가 해제되지만 그때에는 시설 입소일로부터 10일이 지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남편과 첫째도 자가격리 대상이 되어 2주 동안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급하게 생활치료센터에 온지라 여유 있게 짐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바뀐 상황도 적응이 되질 않아 그저 멍하니 며칠을 보냈다. 퍼뜩 정신을 차려 보니 곧 변론 기일이었다.


남편도 자가격리 중이라 재판에 참석할 수 없었다. 법원에 전화를 걸어 방법을 물었다. 전화를 받은 법원주사는 자가격리 대상이라 통보받은 문자를 첨부자료로 하여 변론기일변경 신청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전자 소송 홈페이지로 들어가 변경 신청 사유에 ‘코로나19로 인한 자가격리’라고 짧게 적고는 신청 버튼을 눌렀다.

며칠 내로 기일변경명령이 떨어졌다. 재판은 한 달 뒤로 연기되었다.


한편 음성이었던 나는 둘째와 달리 퇴소할 때에도 PCR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는데 이때 양성으로 판정받았다. 함께 지내는 동안 둘째로부터 코로나가 전염된 까닭이었다. 둘째를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다시 10일을 생활치료센터에서 지내게 되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책상 하나 침대 하나 있는 공간에 갇혀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머릿속이 비워졌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그 가운데 민사소송도 있었다. 어쩌자고 이 길을 선택했을까. 재판은 언제쯤 끝이 날까. 결론은 어떻게 날까. 우리는 재판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딱히 답은 없는 그런 질문들이었다.




생활치료센터에서 나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씩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던 어느 날 오후, 남편이 기사 하나를 보냈다.


여름이 되어 코로나의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기미를 보이자 정부에서는 수도권에 거리두기 4단계를 적용했다. 낮시간에는 사적 모임 5인 이상 금지, 오후 6시 이후에는 3인 이상 금지라는 강력한 방역 조치였다.


대법원에서도 이에 맞추어 수도권 법원에 재판 일정을 연기하거나 변경하라는 권고가 내렸다. 우리 재판일을 불과 4일 앞두고 나온 내용이었다.


다음날 변론기일이 변경되었다는 송달을 받았다. 재판은 또다시 연기된 것이다. 이제는 여름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의 못다한 코로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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