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살았다

나에게 삼십대를 묻는다면

by 마케터유정

“엄마, 이제 우리 여기서 사는 거야?”


새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아이들이 몇 차례 물었다. 우리가 이사 왔다는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할 만큼 아이들은 그 집을 좋아했다.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나와 달리 아이들은 얼마간 옛 집을 계속 찾았다. 복층에 넓은 테라스도 있던 곳.


“그 집 좋은데… 계단에 앉아서 놀 수도 있고. 숨을 데도 많았어.”

둘째가 아쉬운 듯 말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테라스로 나가 날씨를 즐겼다.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한바탕 신나게 놀다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나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거실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위층에 있는 방으로 갔고 방에서 놀다가 엄마가 보고 싶으면 쪼르르 내려왔다. 오르내리기 좋은 계단은 아이들에게는 장난감과 다름없었다.


여름이면 테라스에 작은 풀장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고 물총놀이를 하거나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그걸 지켜보며 남편과 나는 안락의자에 앉아 맥주를 홀짝 거렸다.


그런 때도 있었네. 그저 힘들었고 괴로웠던 기억으로 남기기에 그 집은 추억이 많았다. 삼심대를 인생의 토대를 쌓는 시기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시절 숱한 희로애락을 그곳에서 겪었다. 흔하지 않은 경험까지 하고 나서야 마침내 우리는 그 집을 졸업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재판이 마무리되고 마음고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엄마는, “그곳에서 나도 좋은 추억이 많다.”라고 슬며시 말씀하셨다. 애초에 본가와 가까운 곳을 찾았기에 부모님은 나와 남편이 늦는 날이나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날에는 아이들을 자주 돌보아 주셨다. 둘째를 낳고 한동안 아이를 돌봐줄 베이비시터를 구하지 못했을 때 시어머니와 몇 개월간 함께 살았던 곳도 그 집이었다.


층간소음 걱정 없고 테라스도 쓸 수 있어서 동네 친구들은 자주 우리 집에 왔다. 회사 동료, 학교 동창들도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


그 덕분일까. 엄마, 아빠가 겪은 우여곡절과는 달리 아이들은 그 집을 즐거웠던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과 함께 처음으로 그 집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추억을, 남편과 나에게는 배움을 주었던 이제와 돌아보니 고마운 집이었다. 아이들을 키워주었고 나를 성장시켰던 집이었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쑥쑥 자랐고 남편과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 집을 생각하며 항상 머리 아파했던 것이.


몰라서 당했고 당한지도 모르고 나니 삼십대가 끝나 있었다.

그 집을 추억하면서 지나간 삼십대를 돌아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소리 내어 읽어본다.


노인들

기형도

감당하기 벅찬 나날들은 이미 다 지나갔다

그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은

봄빛이 닿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 목을 분지르며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내 나이와는 거리가 먼 슬픔들을 나는 느낀다

그리고 그 슬픔들은 내 몫이 아니어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이 고통이 아직은 내 몫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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