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도 배관이 막혔고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배수관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한 두 집에 물이 넘쳤다. 우리 집은 싱크대 주변 정도였다. 그러나 옆 집은 거실, 방 할 것 없이 집 전체가 물바다로 변했다. 옆 집 바닥에 흥건히 고인 물은 이내 아래층 천장을 타고 넘어갔다. 아래층 천장에서도 물이 뚝뚝 떨어졌다.
옆 집에는 20대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파마를 했는지 제법 볼륨감 있는 머리였고 건강한 체격이었다. 그의 모습을 가끔 아침에 마주하며 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마주칠 때마다 그는 목례를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가거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어머니이신 듯 한 분이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며 이사 왔다고 수줍게 떡을 내미셨다. 한 번은 젊은 남녀가 저녁 시간에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른 적이 있었다. 누구시냐고 하자 옆집 사는 남자의 누나라고 했다. 1층 현관문 번호를 몰라 우리 집에 연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도 점잖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옆집과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시각,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지 살펴보니 옆집 남자였다. 초인종 화면을 보니 1층 현관문이었다. 왜 눌렀지? 하는 의아함과 동시에 아, 카드키를 두고 나왔구나 싶었다. “아 네네~” 하면서 1층 현관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옆집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때도 말이 없었다.
4년을 살면서 옆 집과의 접촉은 이 정도뿐이었다. 남자는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왔기에 우리와 마주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그가 늦은 시간 집에 들어와 불을 켜고 얼마나 놀랐을까. 물로 가득 찬 마루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나중에 옆집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집주인이 피해 상황 좀 보라고 씩씩대며 나를 불렀던 까닭이다. 물이 빠진 마루는 들떠서 보기 흉하게 변해 있었다. 소파, 책장 등 가구들도 못쓰게 되어 버렸다.
집이 물바다가 된 이후에는 공사를 하느라고 얼마 간 옆집 남자는 밖에서 살았다. 수리가 끝나고 그는 돌아왔지만 마주할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이사 가는 날까지 현관문을 들고날 때마다 열심히 인기척을 찾았으나 끝내 그를 볼 수 없었다.
왜 그렇게 그를 만나고 싶었냐고. 누수로 인한 피해가 제일 컸던 사람이 그였다. 말 한마디 한적 없지만 우리는 같은 곳에 사는 이웃이었다. 그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동안 어디서 지냈는지, 아끼는 것들이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혹시 그가 집주인 말만 듣고 우리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를 만났다면 나는 무슨 말을 꺼냈을까.
“많이 놀라셨죠? 어쩌면 좋아요..”
“그동안 불편하셨죠.”
“집주인이 정말…”
따지고 보면 그와 나눌 말도 마땅히 없었다. 그냥 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어쩌다 마주쳐도 후다닥 사라지긴 했지만 그를 보면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떡을 나누어 주었을 땐 이런 당부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가 객지에서 잘 지내는지 봐주세요 하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산지 6개월쯤 되었을까? 하굣길 마중 나간 베이비 시터 이모님과 길이 엇갈려 아이가 혼자 집에 온 적이 있었다. 집 비밀번호를 몰랐던 아이가 문 앞에 서 있자 옆집 아주머니는 아이를 잠시 당신 집으로 데리고 가서 우유와 과자를 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이웃과 자주 소통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누가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한참 소송 중일 때 그가 생각난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가 이 일로 소송까지 진행했다는 걸 알까?
옆 집으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렇게 매듭지어져 못내 아쉽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마땅히 없어 그저 평안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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