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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Nov 21. 2023

스무 살, 영재 판정을 받다.

열아홉 살 적 나는, 지능을 나의 가장 큰 결핍으로 여겼다.

사건의 발단은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발견한 게시글 하나였다. <어른이 된 영재들>이라는 책을 발췌한 글이었고, 자신이 영재일 거라 착각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기대 없이 글을 읽었고, 직후에도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며칠 후 괜히 한 번 글을 또 읽어보았고, 또 며칠 후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어, 내 얘기인데?”


게시글에서 발췌된 부분 중 일부

‘말도 안 돼. 나같이 멍청한 놈이 무슨 영재야. 내 내신 등급은 1등급은커녕 2등급도 안 되는데, 나보다 영특한 친구들이 내 주변에 얼마나 많은데.’



그러나 어느새 내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검색창에 책 제목을 입력하고 관련 글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럴수록 입에서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모든 문장이 하나같이 나를 설명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엄마와 나눴던 대화이다.

이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서 좋았냐고?

아니.

어딘가에 속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나는 내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봐도 내 사고방식이 매우 이상했다. 과하게 초월적이어서 모든 걸 무의미하게 여겼다.

어릴 적부터 유행과는 거리가 멀고, 수학, 과학, 언어학, 록 장르에 관심이 있어서 내 관심사는 또래로부터 배척당하기 일쑤였다.

남들보다 감정이 격렬하다. (긍정적, 부정적 모두)

무언가를 좋아할 때, 나만큼 그 대상에 푹 빠진 사람을 본 적이 매우 드물다.


한마디로, 공감을 잘 얻지 못했다.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이어서 무리에 속하고 싶은 본능을 가졌는데 나는 그 본능을 충족할 수가 없었다.


“나는 과학이랑, 독일어 좋아해.”
“진짜 특이하다. 독일 살다 왔어?”
“아니. 그냥 재밌어서 좋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이런 대화를 했다. 그게 누적되니 정말 외로웠다. 심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불꽃같은 감정을 표출하고 타인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 이미 대학교 희망 학과까지 정했던 나는 친구들에게 문과인지 이과인지 물었고 크게 실망했다. 그것조차 정하지 못한 친구들이 대다수였다. 물리학과에 가고 싶어 하는 내가 마치 검은 개미 무리 속 유일한 ‘빨간 개미처럼 느껴졌다.



특별해서 좋았냐고? 철저히 외로움 뿐이었다. 내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나만 달라서, 웬만한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유튜브로 연애 프로그램을 볼 때 나는 TED 강연을 찾아봤다. 예능도 일절 보지 않는, 너드(Nerd)의 정석이었다.




결국 <어른이 된 영재들>이라는 책을 사서 여러 번 정독했다. 나의 삶 전체가 그 짧은 책 하나에 담겨 있었다. ‘미친놈’에서 ’영재‘로, 내가 속한 무리의 이름이 바뀌었다.



친구 중 가장 똑똑한 친구(알고 보니 아이큐 150대) 책 내용을 공유하고, 인터넷에서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가 강하게 부인했던 나의 총명함을 의심치 않으셨던 선생님(알고 보니 상위 1%)과 다른 선생님(알고 보니 아이큐 158)께도 의견을 구했다. 사실 이 두 번째 선생님께는 영재 판정을 요구하기보다는 내 뇌의 작용이 너무 비정상적이지 않느냐는 토로를 했다.

공책 세 면을 꽉 채운 철학적인 질문들을 보여드렸다. 간절히 내가 정상이길 바라면서. 원래 다 그러는 거 아니냐는 선생님의 답변 아닌 답변.

그때 내가 보여드린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웩슬러 검사 기준, 현재 지능지수가 130 (상위 2%)이고, 알고 보니 유아기 시절엔 대략 140 (상위 0.x%)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현재 우울증, 불안증, 공황과 강박증을 앓고 있고, 학창 시절 적응장애와 신체화 장애에 시달렸다. 성적은 늘 애매하게 우수한 수준이었고 결국 재수를 했다.



그렇다면 필자의 삶은 왜 이렇게 됐는가?

하나부터 열까지 ‘영재성’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이 된다. 사회를 살아가는 최적 지능지수는 115~125인데, 나는 살짝 넘어서버렸고 그게 불행의 서막이었다.



지능지수(IQ)를 측정할 때 평균은 100, 표준편차는 15를 주로 사용한다. 평균에서 2 시그마 벗어난 게 지수 70과 지수 130이 되는 것이다.

지수 70 이하를 지적장애, 130 이상을 영재라 칭한다. 두 집단은 표준편차, 즉 평균에서 동떨어진 정도가 같다. 고지능자들이 삶에서 겪는 어려움의 원인을 대충 감 잡을 수 있지 않겠는가?


고지능자가 아닌 이들에겐 이게 굉장히 낯선 얘기일 것이다. 고지능자들이 관련 호소를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일까?


“지능이 너무 높아서 힘들어요.”


이 말을 과연 누가 믿어주고 공감해 줄까. 그런 인식을 바꿔보고자 이 글을 작성한다. 한 명이라도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기를. 여기 이런 삶도 있다는 걸 알아주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포용해 주기를.


나의 고지능자 친구들도 나와 비슷하다. ‘부담된다, 영재 같은 거 싫다, 지능 낮아지고 싶다.’ 이런 얘기를 주로 나눈다. 앞으로 지능의 단점에 대해 차차 얘기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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