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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Nov 30. 2023

중등도의 우울증과 살아가기

살아있는 게 힘들어

죽겠다.

어젯밤부터 허무주의적인 생각에 파고들어 회의 속에서 몸부림치느라 오전 5시가 넘어 잠에 들었고, 10시쯤 일어나서 3시가 다 되도록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전에는 우울하고 힘들다는 감정 때문에 죽고 싶었다면, 이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 든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오랜만에 20층이 넘는 우리 집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실행할 충동까진 없었다.


첫 끼니는 시리얼로 때우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워있다가, 간단히 두 번째 끼니를 챙겨 먹고 영화를 보러 나갔다.

계속 누워있어서 그런가, 자꾸만 머리가 핑 돌고 배도 아프고 무기력했다. 약속을 취소할까 고민하다가, 조금이라도 활동을 해야겠다 싶어서 영화는 그대로 보기로 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는 도중 이유 모를 슬픔이 느껴지고 눈물이 나서 심호흡을 해야 했다. 영화가 끝나고, 이상하게 좀 슬펐다는 나의 감상평에 친구가 의문을 표했다. ”대체 어디가 슬프다는 거야?“


가장 편한 친구와의 만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라, 집으로, 아니 침대로 도망쳤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은 나를 앞질러 지나갔다.


아, 나 지금 되게 천천히 걷고 있구나.


알 수 없는, 엉킨 실타래 같은 감정들과, 끝나지 않은 대학 입시로 인한 불안과 절망, 어지러움과 같은 신체화 증상 등으로 인해 곧 무너질 사람처럼 힘겹게 걸었다. 가뜩이나 길에 사람도 별로 없어서, 그냥 길바닥에 주저앉고만 싶었다. 빨리 침대에 누워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최선을 다해 걷고 또 걸었다.




내 뇌 속에서 나는 부주의한 관광객이다. (우울증 관련 강연가의 말을 인용해 봤다.)


혼돈뿐이다.

내가 뭘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는 낫고 싶은가, 계속 이대로 아프고 싶은가? 죽고 싶은가, 죽기엔 아쉬운가? 자살이나 자해를 하고 싶은가? 혼자 있기도 싫고, 친구를 만나기도 싫다. 답답함만 증폭된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세상의 부조리함에 굴복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없이 물음표를 던져대는 내가 싫다.

힘 없이 소파에 누워 온몸으로 내가 환자임을 외치는 나도, 날 이렇게 만든 세상도, 날 둘러싼 모든 게 싫다.


왜 죽음은 필연적으로 당사자와 주변인의 고통을 수반하는 건지, 대체 신은 왜 이런 세상을 만든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죽어도 주변인들 모두 나를 지워내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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