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갈서영 Jul 10. 2022

토르, 당신이 <윈터솔저>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토르: 러브 앤 썬더>에 실망했다면


<토르: 러브 앤 썬더>가 진 여러 사명 중 하나는 토르가 겪어온 이 기나긴 정체성의 위기에 마침내 답을 내려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랑했던 캐릭터들과의 잇따른 작별과, 성급히 그들의 자리를 채운 많은 낯선 얼굴들과, 팬데믹의 불안한 극장 상황과, 멀티버스의 혼란함 속에서 너무 오래 헤맸다. 이쯤에서 우릴 안심하게 해줄 답이 필요했다. 토르를 통해 ‘좋았던 시절의’ 마블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건즈앤로지스의 심장 뛰는 기타 리프와, 80년대 락밴드 포스터의 멋들어진 캘리그래피와 함께, 얼굴만 남은 코르그의 입에서 타이카 와이티티의 경쾌한 대답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직 준비해놓은 것도 많고 네가 좀 더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지만 아무튼,) 네가 찾던 건 이제 절대로 없을 거야!


  

토르는 이제 ‘토르’도 아니다 


토르는 자신을 토르로 만드는 거의 모든 것들을 한 번쯤 잃었다. 금강불괴의 무기인 것 같았던 묠니르가 파괴되었고, 트레이드 마크였던 아름다운 장발의 머리는 잘렸으며, 한쪽 눈도 멀었고, 그 조각같은 몸마저 잃었다. 이번 영화의 그는 모든 것을 되찾은 채이다. 흩어졌던 퍼즐 조각을 모두 찾아 맞추긴 했는데, 어쩐 일인지 예전과 똑같은 그림이 전혀 아니다.


토르의 첫 두 개의 솔로 영화의 어둡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는 어벤져스 영화들을 거치며 (그리고 아마 두번째 솔로 영화가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조금씩 희석되다가,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타이카 와이티티를 만나며 새롭게 환기되는 듯 했다. 그러나 <엔드게임>에선 그마저도 충격적일 정도로 붕괴됐기 때문에, 이번 영화가 우리가 사랑했던 토르의 모습을 되돌려놓을 거라는 기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적어도 캐릭터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길 바랐다.  


그러나 알고 보니 토르의 정체성은 어떤 방향으로의 변화를 겪은 게 아니라, 단지 희미해진 것 뿐이었다.


이제 토르는 ‘토르’도 아니고, ‘천둥의 신’이나 ‘묠니르와 스톰브레이커의 주인’으로도 정의 내릴 수 없다. 제인이 단지 묠니르를 들었다는 이유로 ‘마이티 토르’라는 타이틀을 얻은 순간, 토르는 이름이 아니라 도끼든 망치든 천둥에 관련된 어떤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의 직함이 된 것이다. 내내 자신의 고귀함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던 캡틴 아메리카는 그렇다 쳐도,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일회성 히어로에게 내주기엔 토르의 정체성에 너무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뿐만 아니다. 스톰브레이커마저 새로운 주인을 찾았으며, 알고 보니 토르의 힘은 토르만 괜찮다면 누구든, 토끼 인형을 든 어린아이라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옴니포텐트 시티의 수많은 신들과 비슷한 능력의 ‘신들의 왕’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토르 일행이 받은 취급으로 보건대, 첫번째 어벤져스 영화까지만 해도 대단한 줄 알았던 아스가르드의 위엄은 별 게 아니었나 보다.


어쩐지 토르는 새로운 영화가 나올수록 그 정체성이 희미해지고, 인물과 쌓은 관객의 추억도 왜곡되어 가는 것 같다.




당신이 <윈터솔져>와 <어벤져스>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혼란을 겪는 것은 토르 뿐만이 아니다. 이어지는 MCU 개별 작품들의 흐름 자체마저 그렇다.  


‘오피스’나 ‘커뮤니티’ 같은 시트콤들을 볼 때면, 시즌이 지날수록 점점 재미가 없어지는 걸 외면하기 힘들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슬퍼진다. 트로이와 피어스, 셜리는 왜 떠나야 하며, 스크랜튼 지사의 지점장은 왜 바뀌어야 하고, ‘모던 패밀리’의 귀여웠던 아이들은 왜 그렇게 빨리 자라는가? 그러나 우리가 사랑했던 인물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이 성공할수록 재계약하기가 힘들어지고, 작가들의 번쩍이는 아이디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갈되고 만다. 기적적으로 모든 것이 그대로라고 해도, 관객들이 변한다.  


MCU는 어쩌면 ‘오피스’의 시즌 8쯤에 서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피스’가 좋은 이유에 대해 사흘 밤낮을 새며 떠들 수도 있지만, 사실 마이클이 하차한 이후인 시즌 8부터는 보지 않았다. 마이클은 여러모로 정말 특별한 캐릭터이다. 그렇게 부적절한 언행을 일삼고, 무례하고, 매 편 문제를 일으키면서도 정이 가고 작별하기 서운해지는 캐릭터는 다시는 만들지 못할 것 같다. (물론 그런 캐릭터는 다시는 방송에 나와서는 안 될 거다.) 내게 시즌 8이 그렇게 따분했던 이유는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의 빈자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고, 나를 붙잡기에 제임스 스페이더는 마이클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이터널스>가 환대받지 못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랑받던 히어로들을 떠나보내고 그보다 더 대단하다는 새로운 히어로들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에서, 너무 엄숙한 분위기의, 그것도 3시간짜리 영화를 선보이는 것은 좋은 선택일 수 없었다. <엔드게임>이후의 첫 히어로 군단에게서 우리가 눈여겨본 것은 새로운 인물들이 전임자들만큼 사랑하고 정을 붙일 만한 캐릭터들인지였지,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감독의 히어로 영화는 과연 얼마나 다를지가 아니었다.


‘감독의 개성’에 관대한 솔로 영화들은 한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나 스릴러적 연출을 전면에 내세웠고,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영화 내내 타이카 와이티티의 얼굴이 보이는 듯 코믹하고 발랄했다. 너무도 명백하게 ‘샘 레이미의 영화’와 ‘타이카 와이티티의 영화’ 였다. 목적이 다양성에 있는 TV 시리즈의 ‘문나이트’나 ‘미즈 마블’은 더욱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솔로 영화와 시리즈들을 거치며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예전처럼 모든 인물들에게 정을 붙일 수 있는 ‘한 팀’을 만들 기회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내가 ‘블랙 리스트’의 제임스 스페이더를 좋아했음에도 마이클 없는 ‘오피스’는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최근 마블 영화들에 실망했다면 그건 새로운 캐릭터와 작품들이 맘에 들지 않다기보다도, 아마 당신이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를 너무 좋아하거나 첫번째 <어벤져스> 영화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우리에겐 정말이지 슬픈 소식이다. 히어로 군단의 결집력은 (일단 생기기라도 한다면) 더욱 느슨해질 것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낯선 분위기의 영화와 새로운 캐릭터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MCU엔 어벤져스가 없다. 아이언맨 같은 히어로도 더는 없을 것이고, <윈터솔져>처럼 즐길 수 있는 솔로 영화도 없을 것이며, <어벤져스>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에 빠뜨릴 영화도 더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큰 프랜차이즈의 의무 


<탑건:매버릭>이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완전히 반대의 메시지 덕분이었다. 톰 크루즈는 계속되는 변화와 혼란에 지친 우리를 안심시켰다. 여전히 멋있는 미소로 현란한 공중곡예를 선보이면서, 우리에게 단순했던 시절의 영화와 극장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백인 남성들끼리의 신성한 유대와 다분히 미국적인 선전 메시지가 이런 익숙함과 친숙함의 원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건, 톰 크루즈의 말이 맞았다. ‘옛날 방식의 영화’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 엄청난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아도, 거대한 프랜차이즈를 끼지 않아도 이렇게 재밌는 영화를 찍을 수 있으며, 침대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던 관객들을 극장 의자에 앉힐 만한 힘이 있다. 이 ‘올드 타이머’들이 고집하는 영화는 새로운 플랫폼도, 전세계적 팬데믹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영화 안과 밖에서 변화가 휘몰아치는 시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감독과 캐릭터들이 지금이 변화의 시기임을 떠올리게 할수록 ‘예전의’ MCU가 그리워진다. 새로운 영화들과 TV 시리즈들을 챙겨봐도, 나는 아직도 페이즈 3까지의 인물들과 영화들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엔드게임>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뀔 거라는 사실은 분명 공공연했다. 주축을 이뤘던 인물들이 대거 은퇴하고 그들의 스토리를 모두 소진한 상태에서 예전과 같은 영화를 바랄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다만 막상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되니, 그 낯섦과 그리움에 한 발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영화 프랜차이즈가 된 이들의 의무는 당연하게도, 그 자리를 지키고 더욱 규모를 키워나가며, 최대한 오래, 그리고 최대한 많이 이 컨텐츠를 파는 것이다. 마블의 정체성은 분명 아이언맨과 초기 어벤져스 영화에 있다. 다만 이제 이들이 집중해야 할 곳은 초심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전례 없이 거대한 이 영화 제국의 몸집을 불리거나, 적어도 유지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려면 관객들이 전부 떠나갈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 아이언맨과 더 이상 계약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만둘 수도 없고, 캡틴 아메리카 없이 예전의 방식을 고집할 수도 없다.


또 10년 전의 <어벤져스>가 개봉할 때와 비교하면 이들이 만족시켜야 하는 관객도 너무 많이 변했다. 영화를 보는 장소도 바뀌었고, 관객도 바뀌었고, 관객들이 원하는 것도 바뀌었다. 이젠 몇 달에 한 번 극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집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컨텐츠를 소비하려면 더 많은 캐릭터가 필요하다. 우리는 드디어 모든 우주적 위기가 벌어지는 뉴욕과 온 인류의 사명을 짊어진 미국인 이야기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듬직하고 완벽한 백인 남성 군단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무슬림 여자아이가 히어로가 되는 이야기와 해리성 정체장애를 가진 히어로가 이집트를 누비는 이야기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아마 서운하더라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벤져스> 시절의 토르나 예전과 같은 마블 영화들을 기대한다면 앞으로 매번 실망하게 될 거다.  





돌아올 수 없는 걸 기다리지 않는다면 


<완다비전>과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끝없이 몰아닥치는 불행에 대한 완다의 대응이었다. 완다는 이제 할 만큼 했다. 한 번쯤은 희생이나 포기가 아니라 사랑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이번 영화의 토르도 사랑을 택했다. 다만 완다가 사랑과 영웅의식을 맞바꿨다면, 토르는 사랑을 위해 위엄을 포기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후엔 맥주와 나초에 빠져가며 원없이 슬퍼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르에게 맞서기보단 제인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완다가 왕좌에 앉고 더욱 강력한 흑마법을 구사할 동안 토르는 발랄한 복고풍의 갑옷으로 환복하고 러브에게 팬케이크를 구워줬다.


초반부에 코르그가 친절히 설명했듯 토르도 너무 많은 것을 잃어왔다. 이런 개인적 고난에 대처하는 이야기를 다루며 캐릭터의 본질을 보여주는 것이 솔로 영화의 목적이다. 토르가 택한 바로 그 본질 때문에 영화가 유치해지고, 이야기엔  줏대가 없고, 클라이막스 전투 장면이 곧 개봉하는 <미니언즈>와 겨룰 것 같지 않냐고 하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어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캐릭터가 있으면, 불멸의 저주와 신으로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개그와 팝 레퍼런스를 잃지 않는 히어로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와이티티는 적어도 이런 토르의 선택을 자기 연민 없이 유쾌한 오락 영화로 풀어내는 것에는 성공했다. 나는 80년대 락밴드 포스터 같은 레트로하고 발랄한 색감과 건즈앤로지스의 기타, 어김없이 등장하는 코르그와 토르의 천진난만한 개그 같은 요소들의 오바스러움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어느 정도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처럼 주인공들이 세상을 구하려는 건지 멸망시키려는 건지 헷갈리지도 않았고, 여느 히어로의 솔로 영화처럼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설명을 빚지고 있지도 않았다. 약자를 구하고 사랑을 택한, 유쾌하고 하나도 어렵지 않은, 재밌는 히어로 영화였다. 그냥 Sweet child O' mine 같은 노래와 함께 무지개 다리를 타고 사방으로 황금색 피를 튀기며 궁전을 탈출하는 것과 같은, 나를 유쾌하게 해주는 데 최선을 다하는 단순한 영화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영화에 조금 실망했다면 그건 '예전의' 토르의 모습을 원했던  내 기대가 너무 불공평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찾는 '예전의'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캐릭터의 예전 모습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바람이 없었다면 영화에 대해 불평할 것도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돌아오지 않는 걸 기대하지 않았다면 이번 영화의 토르를 더 사랑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슬프게도 MCU는 <탑건>보다는 ‘오피스’에 가까운 것 같다. 톰 크루즈는 기회만 된다면 제트기 타는 영화를 십 년은 더 찍을 수 있을 것 같지만, MCU에서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중심을 지키던 핵심 캐릭터들의 빈자리와 커다란 설정의 변화, 달라진 관객과 상영 방식 같은 것들 때문에, 앞으로 나올 어떤 작품도 우리가 찾던 걸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토르는 돌아올 것이다'라는 자막에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면, 이번 영화의 물 샐 틈 없는 해피엔딩과 러브와 썬더의 행복한 모습에 조금이라도 안심했다면, 아직 떠날 때는 아니다. 자리를 지키고 이들을 지켜보기 위해선 다음 영화가 나오기 전에 서둘러 미련을 버려야 한다.  


완다는 돌아오지 않는 것을 찾아 평행우주를 헤메다 파멸을 맞았고, 제인을 떠나보낸 토르 곁엔 여전히 사랑이 있다.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가 사랑했던 과거의 마블이 영영 돌아오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앞으로 맞닥뜨릴 모든 작품들에 조금 더 관대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픽사, 이 장난감 이야기는 우리의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