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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서영 Jun 27. 2022

픽사, 이 장난감 이야기는 우리의 것

<버즈 라이트이어>와 <토이 스토리>

         

나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무섭다. 누가 그렇게 물을 때면 머릿속에선 너무 허세스럽지 않으면서 적당히 예술적인 작가주의 감독의 목록을 바쁘게 넘긴다. <버즈 라이트이어>를 보면 들뜬 얼굴을 하고 버즈 장난감을 사달라고 졸랐을 앤디의 모습이 그려진다. 앤디와 장난감 친구들이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아주 자연스럽고도 서운한 헤어짐을 맞는 과정을 그린 몇 편의 영화가 떠오른다. 이 기성품 플라스틱 장난감에 헌정된 120분짜리 영화를 보고 나니,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라딘>에겐 없던 것


우리는 왜 2019년의 <알라딘>를 그렇게 좋아했을까? 리메이크 된 <알라딘>이 천만 관객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잘 편곡된 음악과 아름답게 실사화된 화면, 그리고 온 몸을 파랗게 칠하고 매우 중독적인 노래를 부른 윌 스미스 덕분일 것이다.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 영화를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4D와 싱얼롱 상영 티켓이 불티나게 팔렸다. 영화가 끝난 뒤에 사람들은 머릿속이 ‘프린스 알리’의 멜로디로 가득 찬 채 기분 좋게 극장을 떠난다.


https://youtu.be/Q13z_WCr1TU


<토이 스토리 3>의 엔딩 크레딧이 오른 후 상영관의 모습은 정반대였다. <알라딘>이 남녀노소 모두를 즐겁게 하는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공평하게 모두를 울렸다. 그 중에서 눈물을 닦느라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건 어린 아이들보다도 20~30대들이었다.

 

앤디 또래의 이들에게 이 엔딩은 특별했다. 어린이였을 때 우디와 버즈를 처음 만났고, 다 커버렸을 즈음 이 영화가 개봉했다. 이들에게 <토이 스토리 3>는 다시 한 번 나와 놀자는 장난감 친구들의 부름이었다. 이들은 어릴 적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기꺼이 티켓을 끊었으며, 스크린 앞에 앉아 옛 친구들에게 눈물로 작별을 했다.

 

관객에게 두 영화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이유가 있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 비결은 그들이 나눈 ‘이야기’에 있고, <알라딘>이 성공한 이유는 그걸 제외한 모든 것이다. <알라딘>이 손에 꼽을 만큼 신나는 영화이긴 하지만, <토이 스토리>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란

 

찰스 디킨슨의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80세 노인이 있다. 이 노인은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었고, 그 슬픔과 죄책감은 그를 평생 괴롭혀 왔다. 카퍼필드도 어머니와 아내를 잃었지만 고난에 굴하지 않고 꿈을 이루어 낸다. 노인은 이 소설을 통해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Laer, Visconti & Feiereisen, 2018) 이 독자에게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중요한 이유는, 그 이야기가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의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형태가 어떻든 우리가 소비하는 ‘이야기’란 철저히 우리 자신과 우리의 경험 밖에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타자로서의 이야기는 관객의 삶과 연관짓기 쉬울수록 관객의 마음에 들 수 있다. 내 시야에는 존재하지 않는, 타자의 것을 보기 위해 이야기를 소비하지만 결국 그 목적은 다시 우리 자신의 세계와 삶에 대한 설명을 얻기 위해서이다.

 

위 인터뷰의 결론은 관객이 내러티브를 필요로 하는 것에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외부 세계의 이해’, ‘내면 세계의 이해’, ‘외부 세계의 탐구’, ‘내면 세계의 망각’, 그리고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에 대한 보살핌’이다.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패턴’을 통해 외부 세계를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한다. 내러티브 밖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경험을 얻고, 지루한 일상이나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며, 자기 자신을 치유할 기회를 얻는다. (Laer, Visconti & Feiereisen, 2018)

 

즉, 어느 경우이든 우리에게 ‘이야기’란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빌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카퍼필드’가 되려면


어떤 영화 프랜차이즈는 뻔뻔함을 무릅쓰고서라도 영화 속 세계를 계속 확장시키고자 한다. 공룡의 부활이라는 간단하기 그지없는 하이콘셉트로 수십 년동안 비슷한 영화가 끝없이 만들어진다.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에서는 전작에 없는 새로운 요소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코믹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멀티버스’ 개념이 영화에 도입된 것도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나를 포함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위의 다섯 가지 내러티브의 필요성 가운데 ‘내면 세계의 망각’ 항목을 탁월하게 충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오락성이 그들의 목적지라는 점에서, 이런 불평마저 그들의 성공에 대한 반증이다. 재밌는 영화란 종종 그것이 전달하는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의 ‘카퍼필드’가 되는 것이 한 이야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목적지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 다섯 가지 목적지 중에서도 ‘내면 세계의 이해’와 ‘자신의 외로움과 고통에 대한 보살핌’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필요로 하게끔 만들려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믿게 해야 한다.


https://youtu.be/aT_VRJ6tAnA



그리고 픽사는 이걸 해내는 방법을 잘 안다. <토이 스토리 3>는 전작과 10년이 넘는 공백을 두고 개봉했다. 마케팅 측면의 핸디캡이 될 수도 있었으나 타겟을 재설정하며 이 부분은 오히려 기회로 탈바꿈 되었다. 전작 개봉 당시 어린이였던 20~30대를 마케팅 대상으로 삼을 때, 10년이라는 시간은 오히려 이 이야기가 유년기의 추억으로 소화되기에 필요한 자원이 된다. 당시 프로모션의 목표는 앤디의 또래들인 이들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90년대의 저화질로 만든 랏소베어의 가짜 광고 영상이 동심을 자극했고,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피자 플래닛’ 구인 광고가 부착됐으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영화의 처음 65분만 담겨있는 ‘클리프행어 에디션’을 상영하여 궁금증을 유발했다. 잊고 있던 추억 속의 장난감 친구들이 다시금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토이 스토리’의 성공에 대한 지표가 다른 무엇도 아닌 이 마케팅의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관객 자신의 것이 되겠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스크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여느 이야기들과는 다르다. ‘토이 스토리’는 친구를 만나고, 상상의 모험을 떠나고, 어느새 헤어짐을 맞는, 모두가 가진 이 어렴풋한 추억에 제대로 침투한다. 앤디와 장난감 친구들의 작별이 관객을 울리는 이유도 영화가 이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미를 부여하고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경험들과 기억들은 우리의 것이면서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눅은 죄책감을 정리해준 ‘데이비드 카퍼필드’처럼, 우리의 어린 시절을 잘 모아 의미와 감동이 있는 이야기로 처리해준 것이 ‘토이 스토리’가 성공한 이유이다. 관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이야기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특별하지도 않고 유일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관객의 것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야망 있는 아그라바의 공주는 한 명이다. 손에서 얼음을 뿜는 아렌델의 마법 여왕도 한 명이다. 보통의 만화 영화에서는 이런 게 중요하다. 그들의 목표는 공주들과 마법으로 가득 찬 신비한 이야기 세계로 아이들을 초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의 중요성과 용기, 꿈과 사랑처럼 보편적인 가치를 말하더라도 영화는 언제나 ‘특별한 주인공’의 ‘유일한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아이들은 <알라딘>을 보고 자스민의 용기에 감명을 받거나, <겨울왕국>을 보고 형제자매와 화해할 마음이 생겼을지 모른다. 다만 엘사와 안나 코스튬을 입고 그들의 두번째 영화를 보러 온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절대로 손에서 얼음을 뿜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마법 양탄자를 타거나 램프의 요정과 함께 악당을 물리칠 수도 없다. 누구도 엘사나 자스민은 될 수 없다. 그들은 특별하고 유일한 주인공이며, 그게 영화의 핵심이다. 아이들이 그들을 좋아하는 이유도 결국 그 특별함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언젠가 그 아이들은 반드시, 사춘기에 접어들어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열한 살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불쑥 커버려 갖고 놀던 장난감들을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대학생도 될 수 있다. <인사이드 아웃>의 라일리나 앤디는 특별하고 유일한 주인공이 아니다. 우린 모두 한 번쯤은 반항의 시기를 겪는 라일라였고, 인형 놀이를 하는 앤디였다.

 

이것이 <알라딘>과 <겨울왕국>이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픽사의 영화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이다. 특별하지도 유일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은, 대신 우리 주변에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평범하고 작은 것들에게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고, 공주가 아니고 마법도 없는 우리도 눈물겨운 성장 스토리 주인공일 수 있다. <겨울왕국>의 주인공이 되려면 마법을 부리는 여왕이어야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은 과거나 미래의 관객 자신이다. <겨울왕국>을 볼 때 우리는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를 보는 보는 수많은 관객 중 하나이지만, <토이 스토리 3>의 상영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본다. 이 일관적인 메시지가 바로 관객이 매번 픽사의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버즈 라이트이어>에는 우주도 나오고 외계 벌레도 나오고, 커다란 로봇도 나온다. 시간 지연과 일반상대성이론의 개념이 <인터스텔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영화가 끝나면, 관객은 이 모든 이야기가 결국 여섯 살 아이의 장난감 상자 속 플라스틱 인형의 것임을 떠올린다.


수십 년째 이어지는 비슷한 공룡 이야기와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해지는 히어로 영화 틈새에, 어느 여섯 살짜리의 장난감 이야기가 있다.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 이런 영화들 사이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찾기란 아직 어렵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이들 영화에 밀려 도착한 실망스러운 박스오피스 순위 뒤켠이지만) 바로 거기에 있다.




참고: Tom van Laer, Luca M. Visconti & Stephanie Feiereisen (2018) Need for narrative, Journal of Marketing Management, 34:5-6, 484-496, DOI: 10.1080/0267257X.2018.147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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