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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인드박 Sep 02. 2019

완벽한 직장이라는 환상

. 나를 맞춘 다는 것, 버티어 낸다는 것은


내 친구 허봉구가 있었다. 고시생이었다. 봉구는 키가 188cm였는데, 집이 거제도여서 신촌 고시원에 살았다. 대학 3학년이던 어느날 나는 봉구와 술을 마시고, 봉구네 고시원에서 잠을 자리고 했다. 고시원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해서였지만, 고시원 문을 열고나자 마자 후회했다. 봉구 혼자도 몸을 바로 눕히지 못하는 2평도 안되는 고시원방, 같이 잠을 잔다는 게 민폐였다. 하지만, 이미 막차도 끊긴 상태다.그래서 어떻게든 그냥 자기로 했다. 의자를 위로 올리고, 나는 'ㄷ'자로 봉구는 'ㄱ'자로 자세를 잡고는 골라떨어졌다.

(출처-타인은 지옥이다 OCN 캡쳐)

갈증이 나 반수면 상태로 깬 나, 깬 건지 아닌 건지 구분이 안된 시산에 갑자기 봉구의 비명이 들렸다.

"악-!"

"까-악!"

반쯤 눈을 떠보니 봉구가 이마와 눈을 만지고 있었다. 곯아떨어진 봉구는 무의중에 몸을 폈고, 머리가 방문밖에 나간 상태에서 잠을 자다가, 어두운 복도를 지나치는 누군가가 얼굴을 밟을 것이었다.

새벽에 눈 비비던 그 고시생도 복도에 머리 하나가 나와있으니 어지간히 놀랐던지 같이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다음날 멍든 이마를 계란으로 문지르며 봉구가 이야기했다. 고시원에 들어오면서, 몸을 바로 펴고 누운 적이 없다고, 매일 'ㄱ'자로 구부리며 자는데 어제는 술이 너무 취했나보다고.




"입사를 축하합니다." 팻말과 명패, 사원증을 비스듬히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비스듬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멘트는 무엇으로 적을까 하다가, '그래 새로운 시작'이 좋겠다. 포스팅을 올리자 마자 올라오는 축하의 댓글들과 좋아요들. 일상 포스팅을 올리면, 기껏 댓글이 10개 못채우는데, 이번 포스팅은 30개가 넘었다. 기분이 좋다. 회사를 옮기는 이유가 이 '이직 포스팅'을 올리기 위해 였던건지, 오늘은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회사의 브랜드가 곧 나의 브랜드다. 포스팅의 축하의 댓글들을 보며 흐뭇해한다.


하지만, 포스팅 확인도 잠깐, 전쟁터같은 업무에 파묻힌다. 포스팅을 올린지 얼마되지 않아, 후회가 생긴다. 자리가 생긴건 그만한 이유가 생겨서다. 네 번째로 옮긴 회사는 여러모로 입사전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생각햇던 사업의 범위가 너무 작았고, 회사의 문화는 외부로 보인 것과는 달리 보수적이라 놀랐다. 공채위주의 조직구성이다보니,경력사원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경력사원들은 던져놓고 살아남으라는 것 같았다.


주변에 축하인사를 받은지 얼마지 않아, 나에게 맞는 직장은 없다는 것을 또 깨닫는다. 아무리 보기 좋은 회사도, 땅값이 그렇게 비싼 곳에 높고 넓은 좋은 건물에 있는 회사도, 그 안에 있는 내가 하루하루가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전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명망있는 회사라도 나와 100%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직접 일해보지 않는 이상.




124번 훈령병으로 논산에서 자대를 배치받던 날, 무거운 더블백을 메고 기차를 올랐다. 전쟁에 가는 것도 아닌데도 내일을 전혀 알 수 없다는 암담한 심정에 온 몸이 긴장했다. 과연 군대생활을 할 수 있을까 절망했다. 먼저 내리면 수도권이고, 늦게 내리면 강원도 전방이라는 동료들의 수근거림을 들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제발 빨리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어느새 다들 내라고 남아있는 몇몇만 보였다. 불안했고 심장은 요동쳤다. 지난날 내가 저지른 잘못을 고해성사하며 눈물이 차오르던 찰라, 나는 끌려와 기차를 내렸다.


눈을 떠보니, 어디선가 익숙한 풍경이 나를 휘감았다. 용산이었다. 새벽 달빛이 63빌딩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서울에 배치받았다. 속으로 만세, 만세, 만세를 불었지만, 군대는 군대였다. 밤마다 보이지 않는 구타가 이루어졌다. 내무반의 불이 꺼지면 기수 집합, 상병 말년 일할기수는 검은 장갑을 끼고 목침을 때렸다. 누군가는 그 서울안에서 탈영을 했다. 누군가는 그 서울안에서 자살을 하러 보일러 기둥에 올라갔다.


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은 그렇게 극단적이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야간 보초를 서며 바라보던 달빛에 보이는 63빌딩과 그 밑을 지나가는 1호선 지하철 열차안의 사람들이었다. 아직 바깥의 세상은 존재했던 것이다.



점심시간, 미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밥을 먹을까 아니면 그냥 잠을 잘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 팀 양철곤 차장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오지마 오지마...'

양차창이 조용히 내 자리로 왔다. 밥을 같이 먹자고 하는 것이다.


몇일 지나지 않은 나도 알 수 있었다. 누가 팀의 메인이고 누가 팀의 서브인지. 얼마전 옆팀 팀장이 대놓고 양차장에게 화를 낸 것은, 그저 표면적인 것일 뿐이고, 팀 전체가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같은 층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었다.동병상련,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양차장과 어울리면 같이 그룹핑 되는 것은 시간문재다.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약속 없으면, 같이 순대국 먹으러 갈까요?"  

귀보다는 혀가 먼저 반응했다. 어느새 양차장과 같이 엘리베이터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 양차장과 같이 회사옆 귀퉁이에 있는 순대국집으로 간 나. 침묵이 어색한 나는 경력사원들의 공통화제를 꺼내기 시작했다.

"전에는 어디 회사를 다니셨나요?" 나의 질문은 괜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순대국을 놓고 양철곤 차장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내놓으라 하는 중견기업에 다니던 양철곤 선임은 어느날 헤드헌터의 스카웃 연락을 받게 되고, 대기업의 팀장 자리를 제안 받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이라는 브랜드, 그리고, 이제는 팀장으로 새로운 사업을 직접 이끌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다닌 회사에 과감히 사표를 던진 양철곤, 하지만,입사 후에 들은 이야기는 입사 전의 이야기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습니다. 회사는 아직 조직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일단 팀원으로 그를 발령을 냈고, 본부장은 한달 내에 팀원이 꾸려질테니 그 동안 좀 참으라고 했다. 본인이 일하던 분야가 아닌 곳에서, 약속을 기다리며 3개월, 6개월을 일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전문분야가 아니다보니, 업무는 다른 이들보다 뒤쳐질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6개월이 지나갔지만, 원래의 제안은 흐지부지 되었고, 본부장 마져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양차장의 이야기만 들으면, 이건 취업사기였다.



무심코 페이스북을 열었다. 페이스북은 5년전 내 기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입사를 축하합니다." 팻말과 명패, 사원증이 비스듬히 책상 위에 올려져있었다.

용케 잘도 버텨낸 것이다.

매일 몸을 'ㄱ'자로 구부리며, 고시원에서 잠을 자던 내 친구 봉구처럼, 달밤에 비춘 63빌딩을 바라보며 담하나 사이를 두고 버티어 내던 나처럼 말이다.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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