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 않다.
대퇴사시대, 도대체 왜 퇴사하세요
책 서문을 읽고 바로 사서 읽었다. 김경욱 작가의 '이렇게 된 이상 마트로 간다' 프롤로그의 제목이었다.
책은 정유회사에 잘 다니다가, 군산에 우리들마트를 연 김경욱 작가의 이야기였다.
미래는 회사 밖에 있다.
'하루 한시간이면 충분한 최소한의 밥벌이'의 첫번째 챕터 제목이 였다. 저자 곤도 코타로는 아사히신문사의 기자였지만, 나이가 들고, 신문사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하자, 최소한의 돈벌이를 위해 농부가 되었다. 하루 한시간 벼농사를 짓고, 나머지 시간에는 본인이 원하는 글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파트장님 차 한잔 해요
메신져 알람이 떴다. J대리였다. 바로 옆에 있지만, 메신져를 보낸다. 핸드폰 전화를 하지 않고, 카톡이나 문자를 하듯이. J는 공채로 입사한 뒤, 육아휴직 후, 지난 달 복귀한 친구였다. 이제 회사생활을 10년을 넘게 하니, 이제 차한잔도 같은 차한잔이 아님을 안다. 이 차한잔은 분명 회사 퇴사 시그널인데. '회사를 옮기는 건가 싶었다. 평소 밝고 쾌활한 분위기 메이커였던 J를 보내는 게 아쉬웠다.
회사 카페테리아로 툴툴 걸어가니, 예상대로 J가내게 먼저 말했다.
저 퇴사할께요.
'딩동댕' 역시 내 예감은 틀린적이 없는거다. 나는 퇴사를 해보기만 했지, 퇴사를 받아주는 입장은 아직 서툴었다. 무슨 말을 해야하나 고민하다, 반사적으로 네~ 라는 대답을 하고 만다.
이유는 안물어보시는 거에요? J가 뭔가 억울한 듯이 이야기했다.
이럴때는 그저 과묵한게 최고지. 물끄러미 쳐다보는 걸 느꼈는지 J가 말했다.
저 지난달에 연봉 이미 벌었어요. 암호화폐 투자했거든요. 연봉 2~3배는 이미 벌었어서, 굳이 일할 필요를 못느껴요. J는 육아휴직동안 암호화폐를 공부하고 투자했다고 했다.
J가 이제 동기들과 인사를 해야겠다며, 자리를 일어서며. 내게 뭔가 미안했는지, 얘기했다.
파트장님, 이제 원자재에 투자하세요. 그리고 암호화폐도 한번 공부해보시구.
딩.동.댕
그날 저녁 나는 그룹장, 그룹장례식장에 와 있다. 일면식도 없는 분의 장례식장, 양복을 차려입고 뺏지를 달고, 경직되서 서있었다. 모두 똑같은 검정양복과 넥타이를 메고, 귀빈 안내를 하거나, 구두를 정리하거나, 부주금을 정리한다. 누군가 밤 늦게까지 순번을 정하면, 돌아가며 그 일을 맡았다. 누구도 거기서 왜 있어야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가? 시간외 근무수당도 얘기가 없다. 임원 누군가는 우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버지? 그렇게 3일을 나갔다. 때로는 도열해서 인사를 하거나, 집게를 들고, 구두를 정리했다.
미국 라스베가스 전시장이 와있다. 오너 일가중 누군가가 전시장이 마음에 들리않다는 이야기 하고 갔다며 부사장은 화를 냈다. 팀장은 전시회 하루전 레이아웃을 수정했고, 미국 스텝들은 사전 얘기된 것과 다르며, 수정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손발을 들고 나갔다. 팀장이 미국 에이전시 대표를 붙들고, 당일 일당을 두배로 주겠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급히 에이전시를 바꾸자고 했지만, 섭외도 계약위반도 걸렸다. 남아있는 한국에이전시와 출장자,미국 법인직원이 모두 소집됐다. 반나절만에 진열 상품과 전시장 레이아웃을 부분 바꾸었다. 동선도 스크립트도 바뀌었다. 전시회가 끝나고, 한국식당에서 내 앞에 앉은 미국인 P가 볼멘소리를 했다. 자신의 회계사인데, 왜 이 박스를 나르고 진열해야했냐고. 순대볶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맥주를 마셨다.
미국에서 돌아와서도 일은 계속이다, 출장전표처리와 전시 물품 배송 때문에 페덱스와 한국 택배사와 연락을 하고 있을때. 메신져 알람이 떴다. "파트장님, 차한잔 해요" 알람이 울렸다. 퇴사 정도는 아닌 가벼운 차한잔이다.
"공정하지 않아요"
대뜸 L대리가 내게 얘기했다. 네이버 뉴스를 보여주며, 회장기사를 보여주었다. 직원 연봉인상률은 기껏 3%인데, 고용보험료가 오르고, 건강보험료가 다 올랐는데, 회장은 180억을 연봉으로 가져가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그러면서, 말도 안되는 목표를 내려주고는, 목표가 미달성되었으니, 인센티브는 없다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네~ 그렇게 밖에 할말이 없다.
울분을 토하는 L대리에게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줄 뿐이다. 퇴사하는 J가 연차휴가를 마치고, 밝게 웃으며 L대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우~L대리가 아직 회사에 애정이 많아서 그래' J가 이야기 했다. 공채선후배인 L대리가 못내 안쓰러워보였는지, J가 달랜다. J는 육아휴직동안 어떤 공부를 했는지 우리에게 설파를 했다.
부은 몸땡이를 부여잡고, 애를 보면서, 투자서적을 공부했다고. 떠나는 L대리가 사자후를 뿜는다.
세상만사 공짜는 없는 거다.
팀장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다. 난 아무말도 해줄수 없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다행이다. 팀장이 날 살릴때도 있구나.
빨리와라!
카톡도 와있었다. 자리로 빠리게 걸어 팀장한테 갔다.
미국법인에 노동부가 왔덴다. 팀장이 앞에 앉은 미국인 직원 C를 앉혀두고,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US Department of Labor.
미국인 C가 미국 발음으로 한번더 친절하게 알려준다. 친절한 C, 미국인 재미교포 녀석이다.
팀장이 미국법인에서 온 메일 내용을 보여주었다. 전시회에서 이후에, 불만을 얘기한 미국 현지직원들과 신임임원P가 언쟁을 했고, P는 직원들을 세워두고 한국욕을 했다고 한다. 근데, 요즘은 한류덕에 한국욕을 알아듣는 현지직원들이 있었고, 일부 직원들이 핸드폰으로 녹음과 녹화를 해서 자신들이 모욕을 당했다며 미국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신임임원 P는 아직 발령전이라 관광비자인 상태였다.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며 팀장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C가 한국말로 어색하지만,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고용노동부 인터뷰는 강제력이 없으니까요, 근데 관광비자로 일하는 것은 미국정보를 속인거라 이민법상 사기, Fraud로 간주되서 L1비자 못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미국 얘기만 나오면 전문가스러운 C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전시물품들만 잘들어오면 된다. 자리에 앉았다. 전화가 울리고, 지주사 L이 연락이 왔다. 러시아에 간 회장 친척분이 사진을 찍어서 보냈단다. 매장의 그룹 로고가 잘못된 위치에 있다고 했단다.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L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망설이다 네~라고 해버렸다. 또. 러시아 법인장에게 연락을 했다. 바쁜데, 그거 언제 신경쓰냐고 한마디 한다. 러시아에서 그룹로고를 어디에 붙이든 현지인들은 모르는데, 그걸 왜 다시 바꿔야 하는거냐.
그래서 한마디했다. 네~.
동기모임 저녁식사. 해물찜앞에 8명이 모였다. 그룹 경력사원 동기 22명중, 연락이 닿는 10명중 2명은 야근이다. 지주사 법무팀 K변이 오랬만에 나왔다. 생할법률상담센터가 해물찜앞에서 벌어졌다. 사법연수원 어플을 보여주며, 변호사 이름을 검색하니, 바로 기수와 법무법인, 연락처가 나온다. 그리고, 해물찜 칼국수를 시킬 시간, K변호사가 전화를 받고는 급히 짐을 쌌다. 급한 일이 생겨서 바로 회사로 들어간다고 했다. 조개찜 국수와 볶음밥이 진짜 맛있는 집인데. 동기 누군가가 말했다. 다음날 뉴스보면 나올수도 있다고. 그랬다. K변은 연수원에서 우리와 같이 경력사원교육을 받다가, 수료 이틀전 급박한 일이 생겼는지, 회사로 강제복귀했었다. 다음날부터 뉴스가 나와서, 우린 알았다. K변이 왜 들어갔는지.
다음날도 사무실안의 세상은 그렇게 바쁘게 돌아갔다. 그래서 잊었는지도 모른다. 나말고 바깥 세상을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이다. 조용히 네이버를 쳐서 검색을 해본다.
회장
회장 연봉
회장 차남.
직장인.
노비.
암호화폐.
지금은 소녀시대, 아니 대퇴사시대.
메신져를 키고 나는 팀장님에게 쪽지를 썼다.
팀장님, 차 한잔 하실래요?